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로마제국의 중심인 이탈리아는 오랫동안 도시국가로 지내오다가 1789년 프랑스혁명의 영향으로 1848년부터 통일운동을 전개하다가 1861년 사르데냐 왕 에마뉘엘 2세(Vittorio Emanuele II: 1820~1878)와 가리발디 장군(Giuseppe Garibaldi: 1807~1882)에 의하여 통일 이탈리아가 성립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도 진정한 국민통합은 이루어지지 않고, 국기인 축구 경기 때에만 단결력을 보인다고 한다. 이탈리아는 남북한 면적보다 약간 큰 30만㎢로서 일본, 영국과 비슷하고, 인구는 약 6000만 명이 살고 있으며, 수도 로마는 380만 명이 살고 있다.

이탈리아반도는 중부의 로마를 기준으로 나폴리·폼페이·소렌토 등 남부 지중해 쪽 지방은 농촌지역이고, 피렌체·베로나·밀라노 등 북부는 상업이 발달한 도시여서 빈부 차이가 심하다고 한다. 로마는 도시 전체가 UNESCO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어서 도심을 에워싼 62㎞ 순환도로 이내는 일체의 증·개축이 금지하고 외곽에만 신축건물을 짓도록 하지만, 연간 1000만 명 이상의 외국 관광객이 찾아오는 국제적인 관광도시인데도 관광지나 호텔, 음식점 등에서 관광객을 배려한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국제어로 알려진 영어도 관광객을 맞는 일부 호텔이나 음식점 등에서나 한두 마디 통할 뿐 천덕꾸러기였고, 어느 유적지를 가봐도 이탈리아어로 소개한 안내판뿐이다. 또,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의 공통점이기도 하지만, 공중화장실이 거의 없다. 고속도로휴게소에서도 화장실이 유료이고, 호텔의 프런트 같은 곳에서도 화장실은 좌변기나 소변기도 2∼3개 정도였다. 프랑스의 베르사유나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겪은 일이지만, 관람객의 입장료를 받는 공공기관에서조차 화장실 사용이 유료라는 점도 이상하다.

이렇게 자국인 위주로 살아도 빛나는 조상들의 문화유산을 보러 찾는 외국인들은 그런 불편쯤은 감수해야 한다는 자만심의 표현 같다. 이탈리아 여행은 크게 성지순례, 로마사, 건축, 미술 등 4가지 테마로 나눈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 어느 것도 아닌 단순한 관광객이어서 세계의 수도였던 “로마”와 바티칸 교황청, 예술의 도시 피렌체, 물의 도시 베네치아, 여기에 화산폭발로 파묻힌 비운의 도시 폼페이 이외에도 정원처럼 아름다운 쏘렌토와 나폴리, 그리고 지중해의 휴양지 카프리섬까지 관광했다.
유럽은 2022년 현재 영국이 탈퇴하여 EU 회원국은 27개 국가이고, 2002년부터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지만 각국의 경제 현실이 같지 않아서 경제 대국인 독일과 프랑스 이외에는 모두 인플레이션에 허덕이고 있다. 2001년 처음 서유럽 7개국을 여행하러 갔을 때는 이탈리아 리라와 원화의 비율이 1:0.65 정도로 원화 가치가 더 높았으나, 지금은 1유로가 1380원 수준이다. 게다가 각국이 제각각 유로화를 발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어서 진정한 EU 통합은 낙관하기 어려워 보였다.
잠시 스쳐가는 이방인의 눈에 어느 것 하나 생소하고 낯설지 않은 것이 있으리오만은 대부분 석회암 지대인 유럽에서는 어느 나라를 가든지 지하수를 식수로 마실 수 없고, 생수를 사서 마셔야 한다. 생수가 귀해서 음식점에서 식사 후에 마시는 식수까지 별도로 돈을 주고 마셔야 한다는 데 대해서 생수가 보편화된 우리나라이긴 해도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에 안심해야 할까? 음식점에서 별도로 판매하는 생수도 종류가 매우 다양한데, 500㎖ 생수 1병이 3유로(한화 4800원 상당)로 비싸서 마시고 남은 생수는 들고나오는 것이 일상적인 모습이다.
우리가 이탈리아에서 나흘을 묵은 호텔은 시내에서 남동쪽인 Vermicino에 있는 별 4개의 아담한 CLENA palace 호텔이었는데, 별이 4개라고는 해도 우리의 장급 여관이나 될 듯싶다. 호텔 이름은 주인의 어머니 이름이라고 했다.

그런데, 프런트에서 방을 배정받아서 열쇠를 쥐고 올라가면서 가장 맨 먼저 층수 개념의 혼란이 생겼다. 국내에서는 호텔의 현관과 프런트가 있는 곳을 대개 1층이라고 하지만, 유럽에서는 우리의 1층은 0층이고, 2층이 1층인 것이다. 그것은 중세 귀족들이 먼 지역으로 여행하다가 호텔 등에서 묵을 때 침실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가고, 아래층은 말이나 마차를 이끄는 마부들이 머무는 마구간 등이 있는 관습이 전해져서 식당이나 프런트 등 여러 설비를 아래층에 둔 지금까지도 우리의 1층이 0층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호텔이 아닌 일반 상가 건물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유럽의 건축문화는 대리석 문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인데, 유럽 각국의 상가나 주택들은 대개 7∼800년이 넘고, 100년 안팎 된 호텔은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고 한다. 그 결과 여러 가지 생활 도구가 기계화된 지금에도 석조건물의 특성상 크게 개축할 수 없어서 엘리베이터도 4∼5명이 간신히 탈 정도로 비좁고, 프랑스나 영국에서는 실내에 에어컨을 설치할 수 없는 상태였다. 객실에 들어서니 벽은 하얀 대리석이고, 바닥은 무늬목, 소형 냉장고 역시 거울 앞에 만든 탁자의 빛깔과 조화시킨 무늬목으로 커버를 만들어 붙인 섬세함이 마음에 들었다.

이국에서의 첫 밤을 보내고, 아침 식사를 하러 0층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음식은 뷔페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양식 뷔페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다만, 조그만 상표 같은 것조차 알 수 없는 이탈리아어로 된 것이어서 생소하다는 느낌뿐.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로 사과 한 개를 골라서 나이프로 껍질을 깎으려 하니, 옆에 있던 가이드가 그냥 먹어도 좋다고 알려준다. 이탈리아에서는 비료나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어서 과일을 씻거나 깎지 않고 그냥 먹어도 된다는 것인데, 이후 유럽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똑같은 현실을 보고 우리가 너무 농약과 중금속에 오염된 농산물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닌가 반성하기도 했다. 너무 많은 양을 생산하고, 너무 빠른 계절에 먹으려는 인간의 조급증이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어리석음이 아닐는지. 물론, 유럽 각국에서는 농약을 쓰지 않기 때문에 농작물에 병충해도 많이 발생하고, 또 비료를 쓰지 않아서 수확량은 크게 줄어든다고 한다. 나중에 테제베를 타고 영국에 갔을 때 현지 가이드에게 들은 이야기이지만, 젖소를 비롯한 가축들도 인간이 식용 후 영향이 있다고 예방주사나 치료 약을 먹이지 않는다고 했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