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 판테온신전과 오벨리스크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는 380만 명이 살고 있는데, 도시 전체가 UNESCO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이탈리아는 세계 각지에서 연간 10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관광도시로서 성지순례, 로마사, 건축, 미술 등 4가지 목적이라고 하지만 안내도나 이정표 등은 모두 이탈리아어나 라틴어 일색이고 영어나 불어, 독일어 안내도 없는 등 관광 인프라는 낙제점이다. 고대 로마의 발상지인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에마뉘엘 2세 기념관과 베네치아광장이 있는 북서쪽 지역은 평평한 지대인데, 이것은 고대 로마 시대의 건물이 즐비한 캄푸스 마르티우스(Campus Martus) 지역이다. 이 지역을 ‘마르투스 들판’이라고도 하는데, 1400~1500년 전 성벽처럼 높다란 대리석 건물이 즐비하다.

건물 사이에는 마차 한 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좁지만, 당시에는 큰 도로였다. 적과 싸우던 로마인들이 후퇴할 때, 골목으로 들어와서 문만 닫으면 그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성벽이 되어서 추격하던 적들은 좁은 골목에서 미처 후퇴하기도 전에 건물 위에서 집중사격 하는 화살을 맞고 죽었다. 대리석 건물과 좁은 도로는 로마인들의 사려 깊은 전략적 목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런 골목은 오늘날 버스 같은 대형 차량은 당연히 통행하지 못하고, 우리의 마티즈나 티코 같은 소형차만 다닐 수 있다.

택시나 경찰차까지 이런 소형차들이니, 마치 어린이 장난감을 보는 것 같다. 티코 같은 소형차 지붕 위에 경찰 특유의 빨간 불과 파란불이 켜지는 경광등을 부착하고 다니는 것을 상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좁은 골목길을 가다가 마주 오는 차를 만나면 사람은 골목 한쪽으로 비켜서고, 교행하는 차량이라면 잠시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가 차가 지나가면 후진했다가 다시 원래 가던 길을 간다. 요즘의 일방통행 도로와 비슷한 골목이지만 로마인들은 이런 도로 구조에 익숙해서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또, 길바닥은 한 변이 약 30㎝ 안팎인 석주(石柱)를 타일처럼 촘촘히 박은 포장도로인데, 석주는 로마 건국의 유적지인 포로 로마노(Foro Romano)가 계곡을 메운 저지대의 바닥을 다지기 위해서 도로며 광장의 바닥에 박은 것이 기원이 되어 이후 유럽 각국에서 본뜬 도로 건설의 한 모델이 되었다.(자세히는 2022. 12.14. 포로 로마노 참조)

신전 내부 제단
신전 내부 제단

트레비 분수에서 4∼5분 정도 골목길을 걸어가면 넓은 광장이 나오는데, 광장 한 가운데에 분수대와 오벨리스크가 있다. 이곳이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양자이자 사위인 아그리파 황제(Agrippa: BC 63~BC 12)가 BC 27년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바친 신전이다. 로마의 모든 신들을 위하여 지은 팡테온 신전의 ‘팡(pan)’은 라틴어로 ‘모든’이고, ‘테오스(theos)’는 ‘신(神)’, 온(on)은 건물이니, 결국 ‘모든 신의 신전’이란 의미이다.

팡테온 신전은 고대 로마의 신전 중 가장 거대할 뿐만 아니라 가장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고, 이탈리아 모든 성당과 건축물의 모델이 되었다. 당시 로마는 철근이나 시멘트를 사용할 줄 몰라서 건물 아래를 두껍게 쌓다가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얇아지는 건축기법으로 건물 맨 아래의 두께는 6m이고, 꼭대기의 벽 두께는 1.5m라고 한다. 팡테온 신전의 높이는 43.3m인데, 입구에서 제단까지도 43.3m다.(자세히는 2023. 1.4, 트레비분수 참조)

팡테온 신전 천정
팡테온 신전 천정

팡테온 신전의 정문은 원래 지금의 반대쪽에 있었으나, 609년 동로마제국의 포카스 황제(Phocas: 602~610)가 우상을 모시던 팡테온 신전을 성당으로 개조하면서 정문을 북쪽으로 바꿨다. 이때 원형인 팡테온 신전 앞에 캐노피처럼 코린트 지방에서 유행했던 화려한 코린트 양식의 기둥 16개 위에 삼각형 박공판이 있는 경사지붕을 만들고, 추녀 밑에는 라틴어 ‘M. AGRIPPA.L.COS. TERTIUM FECT’가 새겨있다. 이것은 세 번째(TERTIUM) 집정관(COS= CONSUL) 루키우스의 아들(L) 마르쿠스 아그리파(M.AGRIPPA)가 지었다(FECIT)는 것이다. 광장의 커다란 대리석 오벨리스크는 폼페이에서 가져온 것이다. 팡테온 신전의 외벽에 구멍이 뻥뻥 뚫려있는 것은 1624년 교황 우르바노 8세가 바티칸의 성베드로성당 안의 베드로 묘소를 덮는 제단을 만들 때, 청동 구조물과 대리석상 등을 뜯어간 흔적이라고 했다.

팡테온 신전은 포카스 황제 이후 성모 마리아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입장료는 없다. 7m 높이의 거대한 청동 문 2짝으로 만든 정문을 들어서면, 신전 내부는 겉모습과 달리 실내경기장처럼 휑하고, 안쪽 정면에 낮은 무대 같은 사제의 제단이 있을 뿐이다. 제단 오른편에는 1861년 이탈리아의 통일을 가져온 에마뉘엘 2세의 무덤이 있고, 왼편 성모마리아상 아래에는 베드로 성당을 그린 천재 화가 라파엘로(Raphaello: 1483~1520)의 무덤이 있다.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 3대 화가로서 37세로 요절했다.

에마뉘엘3세 묘
에마뉘엘3세 묘

팡테온 신전의 천장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구멍이 하나 뚫려있는데, 그 지름이 9m나 된다. 이것은 전기시설이 없던 당시에 신전 내부를 햇빛으로 조명시설로 삼은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큰 구멍에도 실내의 대류현상으로 빗물이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니, 새삼 고대 로마인들의 건축술을 엿보게 했지만, 로마 여행을 하는 동안 세 차례 관람하면서 한번은 비가 내리는 날씨였는데, 빗줄기가 고스란히 떨어지는 것을 직접 겪기도 했다. 훗날 피렌체 출신 건축가 브루넬레스코(Filippo Brunelleschi; 1377~1446)는 팡테온 신전의 돔을 모방하여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 돔을 처음 세움으로써 그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건축가로 인정받을 정도로 팡테온 신전은 당시로서는 첨단과학 설계로 건축된 건물이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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