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도시 전체가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로마 시내에서 넓은 도로가 콜로세움 경기장을 로터리처럼 감싸고 있다. 오전에 바티칸 박물관과 성 베드로 성당을 시작으로 바티칸에서 보내다가 점심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로마 시내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후에는 로마 시내를 돌아보면서 잠깐씩 시내버스를 타기도 했지만, 밤늦게까지 13㎞ 이상 걸었던 것 같다. 너무 많이 걸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인상적인 것은 우리네 시내버스의 2/3 정도 크기이고, 정류장에서 걷다시피 해서 버스를 탈 수 있을 정도로 낮은 저상버스에 왠지 친근감이 있었다.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콘스탄티누스 황제 개선문이 있는 왼편 길은 이탈리아 통일 기념관과 베네치아 광장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쭉 뻗은 길을 향한 네거리에는 유엔 식량 기구(FAO)의 흰색 빌딩이 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개선문에서 오른쪽 길은 완만한 비탈길인데, 그 도로와 고대 로마 유적지(Foro Romano) 사이에는 고대 로마 시대 병사들이 마차경기를 벌였던 긴 타원형 모양의 치르코 마시모 마차경기장(Circo Massimo)이 있다. 오늘날 축구장이나 트랙경기장 같은 마차경기장은 길이가 약 700m나 되며, 관중 25만 명을 수용했다고 하는데, 평시에도 전투 훈련을 생활 스포츠로 삼은 로마인들의 숭무 정신을 잘 알게 해준다.(자세히는 2022.12.21. 콜로세움 경기장 참조)

이곳은 1959년 찰턴 헤스턴, 스티븐 보이드, 잭 호킨스 등이 출연하고,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제작한 영화 벤허(Ben-Hur)에서 불꽃 튀기는 마차경주가 벌어진 무대라고 했다. 그 비탈길을 내려가면 길가 오른편에 AD 500년경에 세운 코스메딘의 성모 마리아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in Cosmedin)이 있다. 성모 마리아 성당은 7층 높이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이 아름다운데, 성당 입구의 도로 쪽에는 철제 울타리를 만든 좁은 공간에 털보 얼굴 같기도 하고, 갈기를 세운 수사자 얼굴과 비슷한 원반 모양의 부조물이 있다. 부조물은 지름이 1.5m, 무게는 약 1300㎏이나 된다고 하며 눈, 콧구멍, 입이 뚫려 있다.
그리스인들은 이 세상은 평평한 원반처럼 생겼고, 지중해를 중심으로 세상이 양쪽으로 나눠졌다고 믿었는데, 부조물은 바다와 육지의 연결지점에 설치한 바다의 신 혹은 강의 신이라고 했다. 제우스가 세상을 지배하기 훨씬 전에 세계를 지배하던 티탄 신족 중 바다와 강을 지배하는 신 오케아노스(Oceans)라고 하는데, 오케아노스는 아내 테티스와 사이에서 3000명의 딸을 낳았다고 한다. 그러나 오케아노스가 아니라 바다의 신 프로테우스(Proteus)라고도 한다. 프로테우스는 제우스(Zeus)가 티탄 신족을 물리친 뒤 새로운 지배자가 되어서 하늘을 다스리고, 포세이돈(Poseidon)은 바다를, 하데스(Hades)는 세계를 다스릴 때, 프로테우스는 포세이돈의 부화였다고 한다. 이 부조물은 13세기경 원래에 있던 곳에서 성당으로 옮겼는데, 이곳은 빈민들이 흑사병 등으로 죽었을 때 시체를 버린 하수구였다.
그런데도 그 부조물의 입에 손을 넣었을 때 거짓말쟁이라면 강의 신이 손을 잘라버린다는 전설이 있어서 부조물의 입을 ‘진실의 입(Bocca dell Verita)’이라고 한다. 그것은 중세 시대에 '거짓말을 한 자는 이 조각의 입에 손을 넣어서 잘려도 좋다'라는 서약을 한 데에서 유래하는데, 벽 뒷면에는 손을 자르는 사람이 도끼를 들고 서 있었다는 설도 있다.

사실 ‘진실의 입’은 대단히 예술성이 있는 작품이 아니지만, 도시 전체가 UNESCO 세계문화유산인 데가 특히 2차 대전으로 도시가 폐허가 되어버린 로마의 상황을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1953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영화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에 나오면서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은 로마에 오면, '반드시'라고 할 만큼 조그만 공간에 있는 진실의 입을 보고, 영화 ‘로마의 휴일’의 여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필수 관광코스이기도 하다.
진실의 입을 보려면 빠르면 30분, 보통 한 시간가량 줄을 서야 할 정도로 붐비는데, 로마에서는 어느 유적이나 관광지를 찾아가더라도 이만큼은 긴 줄을 서야 한다. 게다가 이동시간과 매표하는 시간 그리고 입장하는 줄 대기시간들을 감안하면 하루에 서너 군데가 고작이어서 외국 여행을 할 때는 어떤 관광지를 가더라도 소중한 시간을 매표하고 긴 줄을 허비하지 않고 곧바로 입장하고, 또 비용 절감을 위하여서라면 출국 전에 인터넷으로 미리 뮤지엄 패스(Museum pass)를 살 것을 추천하고 있다.(자세히는 2022.12.21. 콜로세움 경기장 참조)

다만, 성모 마리아 성당 입구에 있는 진실의 입의 입장은 무료인데,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내도록 옆에 모금함이 놓여 있다. 대개 부담이 없는 50센트 정도 내고, 진실의 입이라는 커다란 부조물 앞에서 기념사진 한 장을 찍는 것으로 끝난다. 이미 세상이 어두운 19시부터 1시간가량 한국음식점 고려정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