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되는 도로교통법에 기대한다

▲ 국가별 초보운전자 표지 형태. 사진=국회입법조사처

하릴없이 소모적인 정쟁만을 일삼아 국민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는 정치권 특히 국회에서 지난달 의미 있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얼핏 보면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할 수도 있는데 우리 사회 교통문화 선진화를 위한 생산적인 입법 활동으로 이해된다.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안 발의로 초보운전 개념을 종전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고 1년간 규격화된 표지 부착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골자인데 아울러 고령운전자 표지규정도 추가되었다.

이 표지를 부착한 차량을 대상으로 방어, 양보운전을 준수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초보, 고령, 임산부, 장애인 및 유아동승 운전을 나타내는 표지판이 행정안전부령으로 규격화되어 제작, 무상 배부된다는 것이다.

아쉬운 동시에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조치가 강제성을 가지고 불이행시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부착하고 이행하는 운전자에게 일정 혜택을 부여한다고 하는데 교통문화 선진화를 위하여 진일보한 셈이다. 주차장법을 일부 개정하여 경차나 친환경차의 공공주차장 주차료 50% 감면 규정을 이런 표지판 부착차량에도 적용하여 단속보다는 혜택으로 지율적인 이행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초보운전임을 알리는 표지가 자동차 뒷유리창에 제각기 부착되었는데 그중에는 무례하고 혐오감, 공포분위기를 조장하는 문구와 그림으로 도로 분위기를 살벌하게 해온 경우가 적지 않았다. 유머와 위트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비상식적인 내용은 그렇지 않아도 어수선하고 불안한 우리 교통현실을 각박하고 으스스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아이가 타고 있다는 표지판 역시 제 기능을 수행하면서 교통안전을 도모하는 차원과는 거리가 있었다. ‘아이가 타고 있어요’ 라는 문구에 귀여운, 소중한, 까칠한 이라는 형용사를 붙인 경우가 많은데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겠지만 안전 확보와는 거리가 있는 수식어가 아닐까 싶다. 적지 않은 표지판에 아이의 혈액형 특히 RH형을 기재하고 있는데 얼핏 생각하면 위급 시 신속한 대응을 위한 현명한 아이디어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의료진과 구급 팀의 견해는 다르다. 사고시 구조한 어린이를 응급차에 실어 병원으로 보내기 바쁜 상황에서 이런 혈액형 표시를 제대로 읽고 전달할 수 있을까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그리고 알렸다 해도 의료진에서 아무런 검사 없이 곧바로 수혈 등의 조치를 취하겠느냐는 반문이다.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도 반드시 검사를 거쳐 혈액형 등 정보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다른 어린이가 탑승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기상황에 대처하겠다는 배려가 혹여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급격히 늘어나는 고령운전자의 경우도 이를 알리는 표지판을 규격화하여 주변 차량의 주의와 배려를 촉구하는 조치도 늦은 감이 있지만 꼭 필요한 대목이다. 대체로 자신이 고령임을 드러내기를 꺼리는 심리로 고령운전자 표시는 아직 드물다, 간혹 ‘어르신 운전’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지만 스스로를 어르신이라 부르는 모양새부터 적절치 않아 보인다. 자녀나 손주들이 부착했다 하더라도 핸들을 잡는 사람이 고령자이니 어르신 대신 다른 문구를 사용했으면 싶다.

늘어나는 자동차 대수에 비하여 발전이 더딘 교통문화. 서로 먼저 가겠다는 일념으로, 온순한 사람도 운전대만 잡으면 조급, 난폭해지는 우리 도로 현실이 이번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을 통하여 조금이나마 부드럽고 차분해졌으면 한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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