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지중해는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의 삼 대륙 사이에 있는 바다다. 지중해는 터키·그리스 부근의 이오니아해(Ionian Sea)를 동지중해, 이베리아반도와 모로코 지역의 서지중해 그리고 이탈리아반도 부근의 중지중해로 나누기도 하는데, 이탈리아반도와 발칸반도 사이를 아드리아해(Adriatic Sea), 이탈리아반도 남쪽 코르시카섬과 시칠리아섬 일대를 티레니아해(Tyrrhenian Sea)라고도 한다. 티레니아해에 있는 작은 섬 카프리(Capri Isl.)는 화산 폭발로 생겼는데, 나폴리와 소렌토에서 가까울 뿐만 아니라 지중해의 특성상 일 년 내내 따뜻한 햇볕과 아름다운 풍광으로 세계 각국의 부호들이 휴양지로 삼는 별장 천지다.



섬은 가로 6㎞, 세로 2㎞로 약간 긴 네모꼴로서 면적은 10㎢이고, 주민은 약 7000명이 살고 있지만, 전 세계 부호들을 고객으로 하는 명품 숍이 즐비하다. 또 수많은 영화 촬영지가 되었고,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는 부호들의 삶이 무엇인지 곁눈질하려고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관광객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다. 엘리자베스 2세 사후에 ‘찰스 3세’가 된 찰스 왕세자와 불의의 교통사고로 고인이 된 다이애나가 결혼 후 직접 요트를 타고 신혼여행을 즐겼고, 또 축구선수 박지성도 신혼여행을 다녀갔다고 한다.
카프리섬은 기원전에 그리스의 식민지로 개척되면서 카프라(Capra: 염소) 혹은 카프로스(Kapros: 멧돼지)라는 지명이 생겼다. AD 1세기에 로마가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한 후 지중해로 진출하면서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시칠리아섬을 휴양지로 삼았다가 카프리섬을 보고 휴양지를 바꿨으며, 2대 황제 티베리우스(Tiberius Augustus)도 이곳에 로마의 12신을 위한 신전을 짓고 이곳에서 여생을 즐겼다고 한다.

지중해 바닷속이 석회암 지대여서 카프리섬 주민들은 고기잡이가 아닌 숙박업·음식점·기념품 판매 등 관광객을 상대로 살아가고 있어서 항구에는 고깃배가 보이지 않고, 커다란 크루즈선과 유원지처럼 크고 작은 요트가 가득했다. 또 모래보다는 조약돌이 더 많은 모래사장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여행객들을 보노라면, 넓은 모래사장으로 유명한 해운대, 만리포, 대천해수욕장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섬에는 나폴리와 소렌토 쪽에 있는 마리나 그란데 항과 그 반대쪽에 마리나 피코라 항 등 두 개의 항구가 있지만, 마리나 그란데 항이 단연 활발하다. 지중해의 최대도시 나폴리에서 카프리섬까지는 정기여객선이 운항하는데, 약 1시간가량 걸린다. 그렇지만, 화산 폭발로 1500년 동안 땅속에 묻혔다가 살아난 불운의 도시 폼페이를 거쳐서 소렌토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페리를 타고 카프리섬으로 갔다. 소렌토에서 카프리까지는 뱃길로 약 32㎞, 약 30분 정도 걸렸다. 섬에 별장이 있는 부호들은 언제든지 찾아와서 여유 있고 호사스러운 삶을 누리지만, 일반 여행객은 유람선을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아보고 섬의 정상까지 한번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주마간산식 눈요기가 전부다.

섬에는 중세의 바르바로사 성과 카스틸리오네 성의 유적이 있고, 카프리섬의 수호성인의 이름을 딴 산 코스탄초 교회가 가장 오래된 교회이다. 또, 1826년 해안의 수많은 천연동굴 중 한 곳인 그로타 아추라(푸른 동굴)에서 석기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어서 여행객을 유혹하고 있지만, 제주도 우도의 검멀레 해수욕장 옆의 동안동굴이나 베트남의 할롱 베이의 동굴을 생각하면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섬에는 택시가 있지만 수많은 관광객으로 택시요금이 터무니없이 비싸서 대부분 미니버스나 푸니쿨라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미니버스와 푸니쿨라 티켓은 공용으로 사용되고 환승도 가능하다. 편도는 1.8유로이고, 1일권 패스는 8.6유로다. 섬의 최고봉인 ‘태양의 산’(Monte Solaro: 589m)에 올라가서 섬 전체를 조망하려면, 산 중턱에 있는 곤돌라 승차장까지 택시, 마을버스와 비슷한 미니버스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도로의 너비가 3∼4m도 되지 않는 비좁고 가파르고 산길을 약 20분쯤 곡예하듯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내내 아슬아슬한 마음을 진정할 수 없을 정도다. 이렇게 험준한 산까지 도로를 만든 섬주민들의 고생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곤돌라 승차장 주변을 움베르토 1세(Umberto) 광장이라고 하는데, 움베르토 1세는 이탈리아 통일 후 초대 임금인 비토리아 에마뉘엘 2세(Vittorio Emanuele II)의 아들이다. 그는 오스트리아와의 전쟁 때 공을 세웠지만, 1900년 1월 밀라노 부근의 몬차(Monza)에서 무정부주의자의 총을 맞고 죽었다. 움베르토 광장은 워낙 비좁아서 광장이란 명칭이 어울리지 않지만, 정상까지 오르지 않고 이곳에서 섬 주변을 조망할 수도 있어서 제2 전망대라고도 한다. 광장 주변에는 명품 숍, 기념품 판매점, 레스토랑도 많아서 관광객들로 붐빈다.

이곳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곤돌라는 케이블 두 가닥에 매달린 1인용 리프트는 비바람은 물론 추락을 막는 아무런 장치도 없는 조금은 허술하고 불안한 구조다. 하지만, 남녀노소 모두 성큼 올라타고 내려오고, 또 설령 추락한다고 해도 지상에서 2∼3m 정도 높이라서 죽기야 하겠는가 하며 자위했다. 곤돌라를 타고 약 15분 정도 걸려서 올라간 정상은 초라한 가게 하나와 그늘막, 그리고 유럽인들이 좋아하는 성모 마리아상이 푸른 이끼가 가득 낀 채 외롭게 드넓은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고작 해발 589m이지만 사방이 탁 트여서 섬 전체는 물론 멀리 나폴리와 소렌토까지 보이는 눈의 풍요로움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한구석에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석상이 조금은 품위가 없어 보이고, 해안가부터 산 중턱까지 빼곡하게 지어진 수많은 하얀색 지붕의 단층 건물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호들의 값비싼 별장이다. 그리고 푸른 바다 위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요트들이 마치 물고기가 한가로이 헤엄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지중해의 푸른 바다를 배경 삼아 몇 장의 기념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