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 폴 보퀴즈(1926∼2018)

5년 전 세상을 떠난 프랑스 요리사 폴 보퀴즈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1975년부터 30년에 걸쳐 세 차례 받았다. 1975년 5등급 ‘슈발리에’ 훈장을 받으면서 국가원수를 위한 만찬 식탁에 특별한 수프를 만들었다. 송로버섯을 주원료로 한 'VGE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당시 프랑스 대통령 이름의 첫 글자) 수프'였다. 수프 그릇의 뚜껑 대신 파이를 씌운 이 수프는 송로버섯 향의 독특한 풍미로 그 후 세계적인 음식의 반열에 올랐다.
VGE 수프는 프랑스 제2의 도시 리옹에 가야 제대로 맛을 음미할 수 있다. '요리의 교황'으로 불렸던 보퀴즈가 태어나서 작업하고 세상을 떠났던 본거지는 행정수도 파리가 아닌 '요리의 수도' 리옹이었다. 지방에서 조금 이름을 얻었다 싶으면 대부분 서울로 몰려들어 결국 지역 특산 별미가 하향평준화 되는 현실에 비추어 각별한 대목이다. 이런저런 평가를 받지만 그래도 아직 나름의 명성을 보유한 미쉐린 음식 평가에서 1965년 이후 줄곧 별 셋, 최고 등급을 보유했던 (2020년 별 둘로 조정) 세계적인 명성의 요리사 보퀴즈는 예술가, 나아가 철학자로도 평가받았는데 고향 리옹을 떠나지 않았고 가업으로 이어온 식당의 태어난 방에서 세상을 떠났으니 요리사의 운명을 타고난 인물인 듯싶다.
그는 화려한 외양과 장식, 높은 열량의 음식보다 식자재의 품질과 특히 신선도를 요리의 생명으로 꼽았다. 1970년대 일본을 방문했을 때 가이세키와 교토지방 요리에 주목하여 식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고 일 년 사계절을 담아낸다는 소신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의 출신지 리옹은 교통과 물류의 요충지로 북부 알자스 로렌 농산물, 남쪽 프로방스와 지중해의 해산물 그리고 리옹을 가로지르는 론 강과 손 강 민물고기 등 다양한 재료가 집결되는 지리상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었다. 특히 리옹은 이탈리아로 통하는 관문이었고 르네상스 이후 정착된 미식 전통으로 파리를 능가하는 식도락의 본고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리옹 사람들은 요리가 예술과 닿아있다고 생각하고 요리사는 음식을 만드는 기술자라기보다 예술가, 철학자로서 식탁을 격상시켰다고 간주해왔다. 리옹 식사 전통에 따르면 샐러드 그릇들은 붉고 흰 바둑판무늬 냅킨이 놓인 식탁에 함께 나와야 하며 주인은 좀 무뚝뚝하고 썰렁한 리옹식 재치로 이 지역 출신 16세기 작가 라블레 풍의 유머를 사이사이 끼워 넣으면서 자리를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즈음 너나없이 바빠지는 일상에서 이런 느긋한 식사 문화는 크게 바뀌고 있지만 매 순간의 삶을 향유하려는 욕망만은 여전히 유효할 수 있다.
리옹은 그래서 오래 전부터 요리 도시, 식도락의 본거지라는 명성을 누려왔다. 이 지역에서는 보퀴즈 식당 같은 고급 음식과 함께 부르주아, 서민 취향에 어울리는 음식들 또한 다양하게 발달해왔는데 1532년 리옹에서 출판된 라블레의 소설 '가르강튀아'에도 특히 잘 드러나 있다. 삶의 즐거움을 향유하기 위하여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가라는 철학을 설파한 이 작품에서 라블레가 언급한 음식은 수십 가지로 특히 잡고기나 소, 돼지의 내장을 이용한 요리가 많다. 곱창, 순대 등은 우리만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맛집, 별미, 식재료, 셰프에 대한 관심이 식을 줄 모르고 있다. 폴 보퀴즈를 능가하는 참신하고 열정적인 요리사들이 속속 배출되어 다양한 요리로 일상의 즐거움을 더해주고 대중들도 요리사를 존중하며 순간순간을 농밀하게 즐기며 감사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졌으면 한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