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 들어서 오일쇼크 등으로 전세계에 큰 경제적 충격이 나타났다. 이전까지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인상이 강했지만 필요 이상의 개입보단 ‘경제적 자유가 정치적 자유와 개인의 자유로 이어진다’라는 걸 골자로 한 신(新)자유주의가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는 소련 등 공산주의 국가를 몰락시키며 전세계는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우리나라 역시 1997년 외환위기의 극복 수단으로서 이를 전격적으로 채용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급성장에 이바지했다는 평을 받긴 하지만 너무 큰 상처를 남겼다. 양극화다. 여전히 양극화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으면서 사회적약자가 대거 등장하게 된 원인 중 하나 꼽는다.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체계가 확립되지 않으면서 앞으로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약자는 계속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양극화를 줄이는 게 앞으로 경제체계의 숙제인 만큼 전세계는 범정부나 시민사회단체 차원에서 이들을 주목하고 있다. 전한빛(30·여) 대전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 역시 사회적약자와 함께 청년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양극화시대에 청년 역시 약자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누군가 아닌 나를 위해
전 사무처장은 사회학도답게 평소 인권 등에 관심을 가졌다. 권리금 문제에 맞서 싸우는 자영업자의 모임인 ‘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인 이른바 맘상모 활동 등에도 나서면서 남들이 외면하는 목소리를 현장에서 생생하게 접했다. 그러다 전 사무처장이 본격적으로 사회적약자를 위한 활동에 나서야겠단 결심을 굳히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인근 주점에 위치한 화장실을 가던 한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무차별하게 살해당한 ‘강남역 살인사건’이 터졌다. 범인은 정신질환이 있던 것으로 알려진 데다 여성을 타깃으로 삼았단 진술을 했다. 이는 곧바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여성 입장에선 ‘피해자가 내가 됐을 수도 있었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런 사회적약자나 인권에 대한 거창한 생각은 없었는데 강남역 살인사건은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역 인근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는데 ‘피해자가 아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도 당했을 수도 있다라는 마음이 커지면서 남을 위함이 아니라 나를 위해 목소리를 내보자란 생각이 컸어요.”

◆“청년도 사회적약자다”
전 사무처장이 여성 관련 사회단체에 들어오고 나서 수많은 부당함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여성을 만났다. 상사로부터 부적절한 언행을 받아 이를 공식적으로 항의하다 해고된 이, 계약기간이 남았는데도 전임자가 빨리 복귀하면서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나온 이, 출산휴가를 신청하니 인사평가가 안 좋아진 이 등. 특히 사기를 당해 성매매에 빠질 수밖에 없던, 어지보면 사회에서도 손가락질하는 나약한 여성을 구제하기 위한 활동에 앞장섰다. 성매매뿐만 아니라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조리한 일을 당하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전 사무처장은 약 3년 동안 이들과 계속 상담을 진행하고 지원책을 찾아 다른 사회단체와 연계하는 등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힘썼다. 전 사무처장이 몸담은 단체가 여성단체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여성이었지만 다른 시민단체와 연대하면서 많은 사회적약자를 접했다. 청년 역시 상당했단다. 한부모가정 등의 청년은 물론 계약직이란 이유로 부당하게 해고당하는 사회초년생 등까지 인권을 위한 활동은 밤낮없이 이어졌다.
“사실 사회적약자 하면 어르신이나 장애인 등을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청년도 많습니다. 청년에게 잘 모르는 법을 들이밀며 정당화하는 시도에 청년은 쉽게 무릎을 꿇어요. 단순히 여성만이 아니라 청년까지, 사회적약자라면 이들의 부당함의 목소리를 듣고 있죠. 이런 걸 보면 저도 청년이지만 우리 사회가 참 악랄하다고 가끔 느껴요.”
◆성장동력 잃은 청년들
전 사무처장이 다양한 상담을 통해 사회적약자 중 하나인 청년을 만나본 결과 문제는 사회에 있다고 진단했다. 예전처럼 고속 성장하는 사회가 아니기에 쉽게 취업하기도 힘들고 취업하더라도 정규직은 꿈도 꿀 수 없는 세상이다. 자연스럽게 평생직장이란 개념은 청년에게 없는 것이다. 정규직도 아니니 언젠간 회사를 나갈 수밖에 없는데 평생직장이라 생각하라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얘기다. 결국 청년은 오래 한 곳을 다니기보다 이직과 전직을 쉽게 선택한다. 여기에 남성은 물론 여성에게도 쉽게 육아 휴가를 허락하지 않는 분위기에 비싸디비싼 집값까지. 청년이 쉽게 포기하는 세상인 게 지금이란다. 그러기에 내 작은 월세방, 내 적은 월급이란 울타리를 치고 혼자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청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이 있지만 근본적인 사회구조에 대한 대격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청년은 영원히 사회적약자에 머물 수밖에 없다.
“청년을 바라보는 시각이 부정적인 것도 사실이지만 청년이 처한 현실은 참담하죠. 이런 환경 때문에 청년은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청년층의 자살률과 우울감이 심각한단 통계가 있죠. 하나의 문제가 아닌 거대한 여러 문제가 얽혀서 그래요. 사회구조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야 할 때 아닐까요.”
전 사무처장의 목소리는 힘이 있다. 단순히 목소리가 크다는 게 아니라 심금을 울릴 매력이 있단 것이다. 너무 높이 올라 사회적약자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높으신 양반을 위해, 그리고 사회적약자가 더 이상 고통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리라.
글·사진=김현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