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중국인이 5000년 역사를 통틀어 가장 존경하는 황제와 가장 혐오하는 황제가 일치한다. 같은 황제지만 가장 존경받기도 하고 가장 원망받기도 한다. 그는 춘추전국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제 영정(嬴政)이다. 현재의 중국은 국토면적이 유럽대륙 전체면적과 비슷하고, 인구는 2배에 달한다. 그래서 중국을 그냥 중국이라고 하기보다는 ‘중국 대륙’이라고 칭한다. 하나의 국가지만, 대륙급 국토와 인구를 보유했기 때문이다.

진시황제가 혼란의 전국시대를 통일하기 이전 중국은 수십 개의 나라로 쪼개져 있었다. 지금의 유럽과 같이 크고 작은 여러 나라가 각자도생하며 살았다. 진시황제가 여러 나라를 하나로 통일해 진(秦)왕조를 열며 비로소 중국은 하나가 되었다. 그가 통일을 이루지 못했다면, 중국은 오늘날과 같은 하나의 나라로 존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중국인은 중국이 하나 될 수 있게 해준 시황제를 가장 존경하는 황제로 꼽는다.

그러나 그토록 어렵게 통일을 이룬 진나라는 불과 15년 만에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 어마어마한 통일 위업을 달성한 진나라가 그토록 쉽게 무너진 것은 법가사상을 바탕으로 백성을 너무도 가혹하게 통치했기 때문이다. 한비자(韓非子)와 이사(李斯) 등의 사상을 수용한 법가사상은 인(仁), 의(義), 덕(德) 등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로지 법의 잣대로 백성을 통치했다. 백성은 늘 공포에 시달렸고, 무거운 의무를 지고 살았다. 그래서 중국인은 진시황을 가장 혐오하는 황제로 지목한다.

국가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법은 필요하고, 법 기강이 무너지면 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법을 지나치게 앞세우고, 모든 일을 법의 잣대로만 재단해 가혹하게 처리한다면 백성은 불안과 공포에 시달려야 한다. 늘 불안했고 공포에 떨었던 진나라 백성은 어마어마한 통일제국을 15년 만에 무너뜨렸다. 이후 유가사상을 국가통치 이념으로 삼은 한(漢) 왕조는 중국의 기틀을 마련하며 성장해 현재 중국의 뿌리를 완성하였다.

러시아의 마지막 왕조인 로마노프도 니콜라이 2세의 가혹한 전제(專制)정치로 무너졌다. 황제의 권위만 앞세우고 백성은 안중에 없던 전제정치가 이어지자 러시아 백성은 혁명으로 응수해 제국을 무너뜨렸다. 백성을 동반자로 보지 않고, 통치의 대상으로만 여긴 대가는 왕조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2000년의 시차가 있지만, 진나라와 로마노프왕조가 무너진 과정은 같다. 강력한 법치만 앞세운 탓이었다.

현재의 대한민국 정부를 지켜보면 법가의 나라 진이 떠오른다. 모두가 우려했던 검찰국가가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뉴스를 보면 검찰 이야기로 시작해 검찰 이야기로 끝나는 느낌이다. 긴급뉴스 알림을 설정한 휴대전화에서는 압수수색과 영장 발부, 검찰 소환 등의 소식이 이어진다. 긴급뉴스 알림이 울릴 때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그럴 때마다 진나라의 망령이 되살아오는 듯 느껴져 마음이 무겁다.

고물가가 이어지고, 고금리로 인한 불황이 이어져 민생은 처참한 지경이지만, 현 정부는 도대체 민생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오로지 정적을 제거하는 데만 혈안이 돼 국민을 짜증스럽게 하고 있다. ‘이러다 말겠지’하는 기대는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오히려 새로운 사건을 계속 만들어내고 공포를 키워가고 있다. 국민이 어떤 마음으로 사태를 바라보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 오로지 검찰, 법, 수사, 구속으로 이 나라를 몰아가고 있다. 그래서 답답하고 짜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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