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무/충남본부장
삶의 마감, 즉 죽음은 생의 끝이며, 존재의 소멸이다. 그래서 산 자에게는 누구나 피하고 싶은 대상이며, 구국(救國)의 결단처럼 공감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죽음을 제외하고는 거론조차 꺼리게 된다. 물론 구국과 사회를 향한 의미 있는 죽음조차도 치유해야 할 시대의 아픔일 뿐 바람직한 죽음이라 찬미할 수는 없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는 이 죽음에 도대체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에, 생명의 존엄성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살기에 살인과 자살이라는 너무나 다르지만 같은 죽음이 전염병처럼 창궐하고 있다. 누구나 맞이해야 할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당장은 생각조차 싫은 죽음이 너무나 나와 내 가족의 곁에 아주 가까이 다가서 있는 것 같아 정말 가슴이 아프다. 아무리 생과 사가 멀고도 가까운 관계라며, 초연하고 대범한 자세로 관조(觀照)한다지만 사회가 지금처럼 죽음을 이렇게 가까이 두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절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인간이기를 거부한 짐승들의 살인과 어린 영혼의 살인, 아동성폭행이 이어지고, 살인을 비웃기라도 하듯 자살 또한 넘쳐난다. 아무나 죽이는 것도 모자라, 스스로를 죽이고 있으니 이건 내가 살기 위해 적을 죽여야 하는 전쟁터보다 더 한 곳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사회다.
연이은 충격에 마음이 그 충격을 이제 더 이상 수용하기조차 힘드니 언제 나와 내 가족이, 내 이웃이 누군가에 의해 생명을 잃지 않을까, 또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지나 않을까 두려움과 걱정에 강한 전율을 느낀다.
처절히 망가진 피해자를 보며 분노와 충격에 몸서리치고, 내 가족도 당할 수 있다는 아주 구체적인 두려움에 어쩔 줄 모르니 이것은 분명 공포다. ‘나는 아니겠지, 내 가족은 아니겠지’라는 위로를 통해 하루하루 멀쩡한 정신으로 버티고 있지만 수시로 불안이 뇌리로 뛰어들어 만감이 교차한다.
더구나 살인 등 강력범죄에 대한 두려움만으로도 스멀거리며 밀려드는 불안을 떨칠 수 없는데, 마치 전염병처럼 번져가는 주변의 자살이 또 다른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가위를 누른다. 살인의 공포도 두렵지만 스스로 생명을 거두어버리는 독한 사회가 던지는 섬뜩함 또한 그 이상으로 다가온다.
무엇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만들었는지, 죽음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 택한 나름 최선의 선택인지 알 수는 없어 그 마지막 선택을 비난할 수도, 그럴 자격도 없다. 하지만 생명이란 정말로 소중한 것이기에, 내 것이면서도 내가 함부로 버릴 수 없는 것이기에 잘못된 선택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더구나 버려지는 생명이 정말 안타깝지만 자살은 단순히 버려지는 것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사회에 생명 경시 풍조를 조성하는 악영향을 생산하는 것이 문제다. 자살은 모방을 낳고, 이는 또 다른 자살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되므로 해서는 안 될 죄악이다.
더구나 죽을 각오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자살을 생각하게 된 당사자의 심정이야 오죽하겠으며, 타인이 그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다. 그러나 생명은 내가 처한 극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며, 버림이 허용되지 않는 신성한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생명을 신성시 여기며, 신성한 생명을 지속하기 위한 타고난 의무를 다해야 한다. 좌절과 고통의 순간을 극복하기 위한 죽을 각오의 노력은 우리에게 반드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는 굳은 믿음 또한 버리지 않아야 한다.
별스럽지 않아 보여도 나와 너는 누군가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다. 소중한 생명을 감히 뺏어버리고, 나의 생명을 함부로 버리는 잔혹사(殘酷史)가 비일비재한 이 비정상적인 사회가 더 이상 지속돼서는 안 된다. 미쳐버린 것 같은 이 사회가 하루빨리 제자리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