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잡한 도심 지역에 조성되는 녹지를 보면 우선 고마운 마음이 든다. 일정한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공간이겠지만 속세에 물든 감성으로서는 우선 아파트나 상가, 빌딩, 주상복합건물을 짓지 않고 금싸라기 땅을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으니 감사하다. 국가나 지자체 소유가 아닐 경우 엄청난 예산을 들여 매입하여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든 조치는 크게 환영할 만하다.
대도시 삭막한 환경에서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것은 도시 어딘가에 녹지공간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간을 조성하는 과정 자체가 도시문화의 소중한 스토리텔링 요소가 되고 있다. 서울의 서울숲, 뉴욕 센트럴파크, 런던 하이드파크, 도쿄 우에노 공원 그리고 파리 불로뉴, 뱅센 숲처럼 도시 곳곳에 만들어진 숲과 나무, 잔디와 화단의 녹지공간은 참으로 소중한 자양분이다. 매연과 소음, 치열한 일상의 번잡함에 시달리는 시민들에게 잠시나마 활력을 주기 때문이다.
녹지, 공원은 아무리 많이 조성되어도 지나치지 않을 도시 핵심요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동안 우리나라 신도시 조성 과정에서 한결같이 미흡했던 녹지공간 확보 그리고 조금 더 긴 안목으로 미래를 내다보며 여유 있게 획정해야 할 도로망 확충의 미흡으로 인한 여러 부작용과 역기능을 숱하게 보아 와서 그러하다.
좁은 도로망, 차별성 없는 디자인의 아파트 숲, 무미건조한 상가건물, 옹색하게 들어선 학교부지 그리고 형식적으로 갖추어놓은 듯한 복지공간 등이 주는 삭막함을 상쇄해줄 도심녹지인데 유달리 인색했던 것이 아닐까.
도심 속 녹지공간이 소중한 이유는 밤낮없이 도시가 뿜어내는 각종 환경공해소와 숨막히는 번잡함을 걸러내는 도시의 허파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잠시라고는 하지만 꽉 짜인 일상에서 벗어나는 육체와 정신의 탈출구가 되는 까닭이다. 도시가 배출하는 여러 온갖 노폐물과 불순물을 여과하여 편안한 호흡으로 유도하는 허파가 된다. 폐의 자정능력이 탁월하고 폐활량이 클수록 인체, 나아가 도시는 건강을 보장하고 거기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이제는 단순히 녹지공간을 조성해 놓는 것에만 만족할 수 없다. 멋지게 갖춰놓은 하드웨어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부가가치를 높여주는 소프트웨어, 특히 문화소프트웨어를 함께 마련했으면 한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어렵게 조성한 멋진 공간과 도심공원, 수목원, 울창한 나무와 예쁜 화초의 진가를 극대화 시키려면 문화콘텐츠로 무장해야 하지 않을까. 그냥 앉아 쉬게 하거나 이런저런 대중용 운동기구를 설치하는 것만으로는 마땅치 않다. 문화의 향기, 예술의 매력을 접하고 향유할 다양한 프로그램이 갖추어질 때 전국 모든 지자체가 목표로 삼는 ‘문화도시’는 차츰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예를 들어 노천무대, 잔디 객석은 어떨까. 연주자와 관중이 호흡을 맞추고 소음을 억제하려는 통행인들의 시민의식만 있다면 거기 멋진 콘서트가 이루어진다. 우리의 고정관념, 화려한 실내공연장에서 맵시 나는 연주복으로 자못 엄숙한 분위기로 진행되는 연주회라는 인식을 떨쳐버리면 야외 문화행사는 즐거워진다. 값비싼 입장료 없이도, 엄숙주의에서 벗어날 때 문화 그리고 예술은 놀이가 되고 삶에 밀착되지 않겠는가. 나무그늘 풀밭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생활문화를 생각해본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