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여행 자유화 그리고 옛 공산권 국가들과 수교 이후 인기 있는 여행지의 하나는 호치민과 메콩강 삼각주 지역이었다. 흔히 ‘방파사’로 불리면서 태국 방콕과 파타야를 거쳐 호치민의 옛 이름 사이공을 들러 귀국하는 코스였는데 그 후 하노이와 하롱베이 관광 그리고 중부 다낭, 후에, 호이안 지역으로 확장되는가 싶었는데 코로나로 침체기를 맞았다. 그 사이 신혼여행을 비롯한 자유여행자들이 남부 무이네, 푸꾸옥 등을 다녀오곤 했다. 이즈음 새로운 베트남 여행지로 나트랑(나짱)과 달랏 상품이 크게 늘었다.
베트남 관광은 우리나라 해외여행 트렌드를 일정부분 반영하는 지표가 되고 있다. 멀어 보이지만 가깝고, 잘 알고 있는 듯해도 사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라 베트남의 추억을 되짚어 본다.
국기 흔들던 기억
예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이 지금 생각하면 어찌 그럴 수 있었을까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군사정권 시절 자연스럽게 사용되던 ‘군관민(軍官民)’이라는 표현이 그렇다. 국민을 제일 뒤에 놓고 군과 관료들을 앞세웠던 이해하기 힘든 사고방식이 그 시절에는 자연스럽게 통용되었고 국민들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대통령 해외순방, 외국원수가 우리나라를 방문할 때 학생들을 동원하여 길가에 도열, 태극기와 외빈의 나라 국기를 흔들도록 했던 일 또한 그렇다. 차량이 통과하는 그 잠시의 순간을 위해 장시간 길가에 서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때 어느 학부모도 왜 이런 행사에 학생들을 동원하느냐고 이의제기를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발음이 어려운 ‘Nguyen’
중·고등학교 시절 외국 대통령 방한 환영 대열에 동원되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북쪽 ‘월맹’과 대비하여 ‘월남’으로 부르던 남 베트남의 구엔 반 티유(阮文紹) 대통령 방한 때 서울시청 근처에서 태극기와 노랑 바탕에 붉은 줄 3개가 그려진 당시 월남 국기를 흔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거리에 나붙은 현수막과 기념우표에는 응우옌 반 티에우를 구엔 반 티유로 적었다. 당시 부통령 응우옌 카오 키(阮高祺)도 구엔 카오 키로 호칭하였다. 외국 나라이름도 주로 한자어 표기를 사용했는데 필리핀을 비율빈, 네덜란드는 화란으로 부르던 시절이었다.
베트남어는 동남아 국가 중 드물게 알파벳으로 표기한다. Nguyen…은 우리 외래어표기법에 의한 표준발음이 응우옌이지만 수많은 다른 표기가 이루어지는데 ‘ㅇㅞㄴ’으로 구성되는 복잡한 발음을 편한 대로 구엔…으로 썼던 듯하다. 응우옌 씨(氏) 성을 가진 베트남 국민이 38.4% 정도 된다니 아마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대성(大姓)이 될 만 하다. 우리나라 김씨와 이씨를 합한 비율보다도 많은데 1억 가까운 베트남 국민 중 3800만이 같은 성을 쓰고 있다.
1990년대 베트남과 수교 이후 양국 교류는 급물살을 탔고 이제 구엔…으로 부르는 일은 드물지만 베트남 도시 나짱을 예전 월남 파병시절 주둔지였던 기억에서인지 나트랑으로 쓰고 있으니 언어표현은 습관과 입에 익숙한 흐름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근래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현지발음 키이우로, 터키 국가 이름 역시 튀르키예로 세계 각국이 약속이나 한 듯이 발 빠르게 바꾸어 부르고 있는 걸 보니 마음먹기 나름인 듯하다. 글로벌 시대, 진정한 우방, 속 깊은 동반자가 되려면 그 나라 말과 글을 정확히 발음하고 쓰려는 노력이 앞서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