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마철이라 하여 비가 어느 정도 내리다가 그치면 불볕더위와 함께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겠지 싶었는데 또다시 폭우는 대형재난, 참사로 이어졌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IT를 활용한 첨단 정보의 가동으로 예전보다는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무고한 인명손실과 어마어마한 경제적 타격을 피해갈 수 없었다. 장마가 시작되면 수해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온 국민의 마음은 한결 같은데 그 희망은 늘 깨지고 있다. 수리시설이 현대화되고 농사기법이 발달했다지만 아직 강수량에 의존하는 전통적 농법이 상존하는 가운데 숱한 인재(人災)가 반복되지만 그 학습효과는 여전히 미미해 보인다. 인간의 방어, 대처능력을 넘어서는 엄청난 자연재해의 위력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애꿎은 희생과 참담한 손실이 안타깝다. 거의 해마다 되풀이되는 가뭄과 수해라는 양극단의 자연재해 앞에서 첨단기술을 향유하며 다소 오만해있던 현대사회의 일각이 맥없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비는 대체로 일상에서도 그러하지만 예술, 특히 시에서 우울하고 어두운 심상을 드러내어 상징하는 매개체였다. 폴 베를렌의 ‘내 마음에 비가 내린다’라는 작품은 이러한 쓸쓸한 정서를 단순한 어휘와 이미지로 표현하면서 오랫동안 비에 대한 대중감성의 윤곽을 형성해 오고 있다. “내 마음에 눈물 흐른다/ 도시에 비가 내리듯이/ 내 마음을 파고드는 / 이 우울함은 무엇인가// (……) - 폴 베를렌, ‘내 마음에 눈물 흐른다’ 부분
19세기 후반에 토로했던 이런 감상투의 정서는 20세기를 지나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엄청난 자연재해 앞에 더 이상 감상차원으로만 머무를 수 없게 되었다. 이즈음 빈번한 기상이변, 자연의 횡포는 결국 일정부분 인간의 예측능력을 벗어나 형성되는 기상구도 탓이기도 하겠지만 결국 인간이 만들어 놓은 훼손과 오염, 환경파괴, 지구온난화 영향 그리고 오만함 역시 크고 작은 가중 요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봄, 가을이 뚜렷하게 짧아지며 여름, 겨울은 마냥 길어진다. 북위, 남위가 높은 지역 국가들이 경험하는 극단적인 밤과 낮 길이 차이를 따라가는듯 계절구분이 예전과 같이 뚜렷하지 않은 것도 불안한 징표로 느껴진다. 계절에 걸맞는 명징한 날씨와 풍광의 변화, 적절한 강수량, 선진 기상정보체계와 미더운 물 관리 시스템 구축으로 걱정 없이 생장하는 작물들... 이즈음 이런 평화스러운 자연과의 동행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바위를 베고 누워 /나무 뿌리와 금광석(金鑛石)에 닿는 꿈꾸는 /물줄기의 잠이다 /목마른 풀잎 끝 적시는 시간의 어둠이다. /창살에 자욱한 안개로 피어오르는 /비는 /애기씨꽃나무 잎새를 두드리는 울음이다. //허리에 닿는 신열(身熱) 몇개를 제련(製鍊)하여 얻어낸다. /산너머 바다에 몰려 있는 구름떼 /흐르려 하는 힘의 향방(向方)을. /숲속 어둠의 눈썹 떨리게 하며 (……) 선(線)을 건드리는 빗방울 /손톱 끝까지 파고 들어 신경을 태운다.(……)
더 이상 장마와 가뭄으로 인한 피해 없이, 잊을 만하면 되풀이 되는 후진국형 인재(人災) 특히 당국 간 볼썽사나운 업무관할 다툼 없는 평온한 일상을 그려보며 김백겸 시인의 ‘비를 주제로 한 서정별곡’ 한 대목을 읽어본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