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 시가지와 에펠탑. 사진=이규식

주철 43.5톤을 사용하여 지름 5.68m, 높이 2m, 두께 5㎝의 거대한 가마솥이 2005년 충북 어느 기초자치단체에서 제작되었다.

군민화합을 도모하며 밥을 짓고 팥죽을 끓이거나 특산물 옥수수를 삶아 나누어 먹는다는 취지였다. 아울러 기네스북 등재도 염두에 두었던 듯하다.

그러나 호주에 밀려 등재는 실패로 돌아갔고 음식 조리도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워낙 규모가 큰 조리도구라 밥을 지으면 3층 밥이 되어 당초 의도한 군민화합과 지역홍보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결국 다른 지역으로 이전을 검토 중이라는데 옮기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 당초 의욕과는 달리 솥단지가 그야말로 애물단지가 되었다.

13년 전 16억 예산으로 경상남도에서 제작한 ‘1592거북선’은 임진왜란 연도인 1592를 앞세운 것처럼 ‘이순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완벽한 고증과 철저한 시공으로 정통 거북선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는 야심찬 의도로 만들어졌다.

수입목재를 사용하는 등 튼실하지 못한 제조공정 탓인지 썩고 녹슬고 뒤틀어져 육지로 올려졌다. 수리비도 만만치 않아 결국 매각을 결정, 여러 차례 입찰에 부쳤으나 번번이 유찰, 마침내 154만원에 낙찰되는 듯했지만 그마저도 계약이 파기되어 해체될 운명에 놓였다. 아까운 예산도 예산이지만 이순신 장군께 대한 예의도 아닌 듯하여 민망스럽다.

전국 광역, 기초 지방자치단체가 이런 대규모 조형물, 상징물 건립에 열을 올리는 것은 그 지역을 상징하는 이른바 랜드마크를 조성하여 홍보와 관광객 유치를 통한 지역 활성화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많은 경우 실용성, 주변 환경과의 조화 등 충분한 검토나 치밀한 사전준비가 미흡하여 결과적으로 흐지부지 예산만 축내는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지자체 단체장 임기 4년 안에 번듯한 조형물을 건립하여 그 앞에 큼지막한 취지문을 세우고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으려는 조급한 마음에서 비롯된 결과이지 싶다.

이런 조형물들이 결과적으로 경제적인 수익을 가져온 드문 사례도 있다. 전남 어느 군에서는 2008년 황금박쥐 생태전시관에 금을 입힌 황금박쥐상을 건립했는데 그 역시 부정적 여론으로 뜨거운 감자의 전철을 밟는가 싶었다.

박쥐 5마리가 날갯짓 하고 있는 이 상징물은 그 사이 금 시세 급등으로 30억 예산을 들인 것이 근래 140여 억 원에 이른다니 금 테크로 성공한 사례로 꼽힐 수 있을까. 예산을 환수하고 차익을 챙기려면 조형물을 부수고 금을 벗겨내야 하는데 그 또한 수월치 않고 보면 지자체 조형물이 드물지만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다는 사례로 만족해야 할지 모르겠다.

랜드 마크. 멀리서도 위치파악에 도움이 되고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건물이나 조형물을 지칭하는데 국가나 도시, 지역을 상징하는 건축물을 포함한다. 현대에 와서 특정도시와 지역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기능의 의미로 굳어졌는데 광화문, 남산 서울타워(서울), 자유의 여신상(뉴욕), 오페라 하우스(시드니), 만리장성(중국) 같이 독특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나라와 도시를 이내 떠올리게 한다.

귀스타브 에펠이 건조한 에펠탑. 파리와 프랑스 나아가 유럽을 상징하는 랜드 마크로 꼽히는 대표 조형물이다.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 상징물로 공사기간 중 도시이미지를 해친다는 들끓는 반대여론 속에 행사가 끝나면 철거하기로 했다.

그 후 134년, 붕괴나 훼손 없이 이 생뚱맞은 300여m 철탑은 여전히 도시와 나라를 떠올리게 하는 효자 관광지, 대표 랜드 마크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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