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훈 선생과 당진 필경사

▲ 충남 당진시 송악읍 상록수길 필경사. 사진=연합뉴스

‘상록수’를 쓴 소설가로 널리 알려진 심훈 선생(1901∼1936)은 걸출한 시인이자 영화인, 언론인이기도 했다. 당시 우국지사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중국 등지를 떠돌며 신산한 시절을 보냈다. 1932년 당진에 정착하여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몇 년간 선생의 문학 연보에서 빛나는 시기를 보낸다. 당진시 송악읍 ‘필경사(筆耕舍)’는 그러므로 심훈 문학이 온전하게 완성된 현장이며 예술의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선생이 보였던 열정과 관심도 그러하고 여기서 태어난 상록수 등 여러 명작은 작품의 산실이 된 필경사라는 이름과 함께 불후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고등학생 시절 3.1 독립운동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옥고를 치렀던 선생이 10년 후 행동적 지식인이 되어 광주 학생 사건을 충격적으로 대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3.1 독립운동 당시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던 독립 의지를 밑그림으로 하여 그로부터 10년 후 광주 학생독립운동 상황과 결합하여 한 폭의 장엄한 항일 민족화를 완성한 것이다. 이 시가 심훈의 대표시 ‘그 날이 오면’이다.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로맨티스트이며 당대 엘리트였으나 안락하고 보장된 장래를 마다하고 독립운동에 참여, 고통스러운 감옥생활을 체험하였다. 그로 인하여 퇴학을 당하고 중국으로 망명하였으니 독립운동은 그에게 삶 자체가 거칠어지는 운명적 모멘트였다.

그 날이 오면에서 시인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날’이 올 것임을 확신하였다. ‘그날’이란 어떤 날일까. 수난과 저항 끝에 죽음을 넘어서서 얻게 되는 자유의 그 날이며 독립의 그 날이다. 그러므로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라는 불가능한 환각체험까지도 여기서는 자연스럽게 진술되며 받아들여진다. ‘그날’은 오랜 일제 강점기를 벗어나 꼭 성취해야 할 민족의 최대 과제이며 신념이었던 까닭에 논리적 모순과 초논리에도 수긍할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이 그토록 갈망했던 광복과 독립을 쟁취한 지 올해로 78년, 선생이 세상을 떠난후 87년이 되었다. 거주지 미국과 당진을 오가며 심훈 선생 유물보존과 기념사업에 열정을 쏟았던 3남 심재호 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 심훈 문학을 현양하고 민족의 사표로 굳건히 정립하는 일은 이제 당진 지역 인사들을 비롯하여 모두의 몫으로 남았다. 또다시 맞이하는 2023년 광복절에 심훈 시인은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갈등과 갖가지 불안 그리고 우리를 둘러싸고 시시각각 파고드는 외세의 영향력이 빚어내는 어수선한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치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 하거던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 심훈, ‘그 날이 오면’ 전부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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