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 베네치아 부두

지금은 상식이 되었지만, 처음 해외여행에 나섰던 30년 전만 해도 프랑스와 불란서가 다른 나라이고, 플로렌스와 피렌체가 다른 도시이고, 베니스와 베네치아도 그런 줄 알았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플로렌스가 피렌체의 영어식 지명이고, 베니스도 베네치아의 영어식 지명이란 것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어쩌면 해방 이후 우리는 그만큼 미국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중세 유적이 가장 많은 도시는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Venezia)인데, 그중 베네치아는 이탈리아반도에서 약 4㎞ 떨어진 아드리아해의 리알토(Rialto) 섬을 중심으로 116개의 섬으로 구성된 해상도시다. 섬들은 409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형성된 독특한 베네치아는 567년 게르만족 일파인 서고트족 아틸라에게 쫓긴 롬바르디아 인들이 바다로 밀려나서 뗏목 위에 집을 짓고 산 것이 시작이다. 그 후에도 육지로 돌아가지 않고 바다 위에서 살면서 아드리아해 건너편에 있는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해상무역을 시작했는데, 7세기 말에는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10세기 말에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강한 자유도시가 되어 베네치아 공화국을 세웠으며, 피렌체에 메디치 가문이 있다면 베네치아에는 세레니시마 가문(Serenissimus Family)이 있다고 할 만큼 세레니시마 가문의 영향이 컸다. 엔리코 단돌로(Enrico Dandolo: 1107~1205) 총독은 1202년 4차 십자군 전쟁 때 세력을 급속히 확대하면서 중계무역으로 커다란 부를 쌓고, 육지인 라벤나 일대를 지배하기도 했다.(자세히는 2023. 8. 30. 라벤나의 초기 기독교 문화 참조)

섬을 잇는 작은 다리
섬을 잇는 작은 다리
탄식의 다리
탄식의 다리
두칼레 궁
두칼레 궁
감옥(오른쪽)
감옥(오른쪽)

그러나 16세기 이후 튀르크인들의 세력이 커지면서 베네치아가 위축되더니, 1797년 나폴레옹 1세가 정복하면서 자치권을 완전히 잃었다.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의 여러 자유도시는 나폴레옹의 침략을 받은 이후 민족주의가 급성장하여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와 사르데냐 왕 에마뉘엘 2세(Vittorio Emanuele II)에 의하여 통일운동이 전개되어 1861년 이탈리아반도가 통일되었다. 그러나 통일 후 1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이탈리아’라는 통합된 국민 의식은 매우 미약하고, 올림픽이나 국제대회에서 국기(國技)라고 할 축구 경기 때에만 이탈리아를 연호한다고 한다.

베네치아는 베네토주의 주도(州都)로서 인구 약 30만 명이 살고 있으며, 피렌체에서 버스로 약 3시간 걸린다. 우리 가족은 도중에 있는 작은 도시 베로나 (Verona)에서 시내 관광을 한 뒤 하룻밤을 묵고 베네치아로 갔다. 이탈리아 북부 도시 중 로마 시대의 유적이 많은 베로나는 로마의 콜로세움경기장보다 더 일찍 지은 고대 원형경기장이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고, 오페라 공연도시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또, 중세 미술의 중심지이자 예술 가구와 귀금속·대리석 공예품을 제작하는 수공업이 발달했던 베로나는 영국이 낳은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and Juliet)’의 배경이 되었던 도시이기도 하다.(자세히는 2023. 8. 9. 오페라의 도시 베로나 참조)

리알토 다리
리알토 다리
대운하. 정면에 리알토 다리가 보인다.
대운하. 정면에 리알토 다리가 보인다.
대운하.
대운하.

베로나에서 베네치아까지는 기차로 약 1시간 20분, 요금은 9유로이고, 버스는 약 2시간가량 걸렸다. 그러나 베네치아를 찾는 한국인들이 넘쳐나서 2018년 5월부터 인천에서 국적기 아시아나가 주 3회 직항 운행을 하고 있다. 만일 기차를 타고 베네치아로 갔다면 산타 루치아 역에서부터 도보로 산마르코 광장까지 이동하고, 페리를 타고 갔다면 선착장에서 ‘탄식의 다리’를 지나 산마르코 광장으로 가는 것이 보통이다.

베네치아는 본섬인 리알토 섬을 중심으로 폭 30~ 70m로 구불거리는 S자형인 3.8㎞에 이르는 대운하 양쪽의 수많은 섬으로 형성된 베네치아는 북동쪽에서 남서쪽까지 약 51㎞로 뻗은 초승달 모양의 석호 중심이 베네치아의 중심이자 베네치아의 상징인 리알토 다리가 있다. 산타 루치아 역에서 산마르코 광장으로 가는 대운하 사이에 있는 리알토 다리는 1100년경 안토니오 다 폰테의 설계로 약 1만 2000개의 나무 말뚝을 박고, 그 위에 아치형으로 지은 폭 28m 다리인데, 대운하 위에 세워진 최초의 다리다. 리알토 다리는 1854년까지도 대운하 사이에 있는 유일한 다리로서 그 아래로 거대한 무역선들이 통행할 정도로 크고 웅대하다.

교각 중심이 높이 치솟은 아치형 다리는 섬 사이를 오가는 중요한 통행로여서 귀금속과 가죽제품을 파는 아케이드가 있는 번화가인데, 리알토 다리는 르네상스 시대의 토목공학이 이룬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받아 1987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베네치아에서는 버스나 자동차, 지하철이 없고, 주요 교통수단은 수상버스(Vaporetto)와 수상택시다. 대중교통수단인 수상 버스정류장은 곳곳에 있고, 운행 간격도 10~15분 정도여서 매우 편리하다. 요금은 1회권(60분)에 7유로이고, 1일권은 20유로인데, 각 정류장에 있는 판매소에서 살 수 있다. 수상택시는 빠르고 편리하지만, 기본요금 10유로이고, 4인 기준 60유로로서 약간 비싸다. 그러나 잠시 거쳐 가는 여행객들은 흰 바탕에 검정 줄무늬 셔츠를 유니폼으로 입은 젊은이들이 노를 젓는 곤돌라를 타고 좁은 섬 사이를 한 바퀴 일주하는 것이 빼놓을 수 없는 관광코스가 되고 있다. 곤돌라 승차장은 베네치아역, 산마르크 광장 주변, 리알토 다리 옆 등 여러 곳에 있다.

자가용 배들.
자가용 배들.
곤돌라.
곤돌라.

곤돌라는 보통의 보트 모양에서 앞쪽이 해적선처럼 휘어진 독특한 나룻배이다. 곤돌라는 파도와 수상택시나 버스가 방해받지 않도록 비좁은 섬 사이를 약 30분 동안 사공이 천천히 노를 저으면서 구경시켜주는데, 2인승, 4인승, 5인승 등 다양하다. 그렇지만, 시간과 주머니 사정에 여유가 있다면, 수상택시를 타고 넓은 운하를 쾌속 질주해보면 곤돌라를 타고 천천히 좁은 섬 사이를 둘러보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그런데, 베네치아인들은 수많은 관광객으로 베네치아가 파괴되고 무질서해진다며, 리알토 다리 위에 관광객 거부 캠페인을 벌이는 현수막을 내걸고 시위하고 있다. 베네치아인들은 이렇게 외지인들의 관광을 강력하게 반대하는데도 관광객은 매년 넘쳐나서 물가가 유난히 비싸다. 물가가 상상외로 비싸서 숙박비가 부담스러워서 육지로 나가서 묵은 뒤, 다시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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