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읽는 16세기 롱사르 시

그대 늙어 어느 저녁 촛불 옆에서
실을 뽑고 감으며, 난롯가에 앉아 있을 때,
내 시를 노래하며, 감탄하면서 말하리라.
《그 옛날 아름다웠던 시절 롱사르가 날 찬미했었지.》
그때 이 말을 듣고, 일에 지쳐 반쯤 잠든
그대 하녀 가운데 롱사르란 소리에
깨어나지 않는 사람 없으리,
그대의 이름을 불멸의 찬사로 칭송했던 그 이름 듣는다면.
나는 땅속에 묻히고 뼈 없는 유령이 되어
도금양 그늘 아래서 쉬리라:
그대는 난롯가에 웅크린 노파가 될 것을,
내 사랑과 오만했던 그대 경멸을 뉘우치리.
삶을 구가하시오, 내 말을 믿는다면 내일을 기다리지 말고;
따시오, 오늘부터 생명의 장미들을.
- 피에르 드 롱사르, ‘그대 늙어 어느 저녁 촛불 옆에서’ 전부
16세기 프랑스 시인 롱사르의 생시 영향력을 지금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작품집이 출간될 때마다 점증하는 권위와 명성은 실로 막강하였다. 시간의 흐름, 평화로운 삶에 대한 열망, 온화한 자연 속으로 도피하고 싶은 욕구, 진정한 아름다움을 향한 찬미 등을 제재로, 진보하는 동시에 흔들리고 있는 16세기 역사와 마주하여 롱사르는 ‘쾌락과 사랑의 기술’을 맛보도록 권유한다. 이 주제는 지금 우리 시, 우리 일상에서도 여전히 노래되고 있다.
롱사르가 채택하는 주제는 우선 현실향락주의의 영감을 받는다. 너무 빨리 사라져버린 청춘을 아쉬워한다. 시간의 흐름을 감동적으로 묘사하여 그 파괴적인 힘과 냉정함을 명석하게 고발한다. 젊었을 때의 시간은 다정스러운 동반자일 수 있으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인간은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롱사르의 문학 사상은 그 후 오랫동안 전반적인 폄하와 적대감정, 가차 없는 평가절하 속에서도 적지 않은 동조와 공감대를 나름 확보하고 있었다. ‘장미’로 집약, 표상되는 롱사르의 사랑의 시, 흔히 롱사르를 사랑의 시인으로만 정의하고 있지만 사실 이런 해석은 그의 독창성과 관심 영역에 대한 부분적인 이해에 그친 것이다. 사랑의 시를 넘어 그는 민족 생존에 관련된 사건이나 상황에 또한 큰 관심을 나타냈고, 정치적·철학적 주제에 관하여 상당한 저술을 남겼다.
특유의 리얼리즘으로 자신의 쇠퇴를 묘사하지만, 떠날 줄 모르는 쾌락과 은총에 대한 향수는 만년의 시에 이르기까지 강렬한 관능의 이미지로 노출되었다.
내년이면 탄생 500주년이 되는 롱사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감정의 여러 혼란과 무상하고 냉정한 시간의 엄청난 위력, 삶의 허망함 그리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늙음에 대한 미묘한 감정 등을 마주할 때 롱사르 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저마다 인생의 지표를 세우고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데 나름 의미 있는 시 한편이 될 수 있을 듯싶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