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 영동군 심천면 구구농원 공연무대에서 제1회 심천역 단막극제가 열리고 있다.
▲ 충북 영동군 심천면 구구농원 공연무대에서 제1회 심천역 단막극제가 열리고 있다.

◆220개 영화제

국내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영화제가 220개라고 한다. 우리나라 시·군·구가 226개니 기초자치단체 한 곳에서 하나씩 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는 셈이다. 부산, 부천, 전주영화제 같이 수준과 지명도를 확보한 행사로부터 군 단위에서 상금도, 특색 있는 테마도 내걸지 않은 무색무취 단편영화제까지 천차만별이다.

주민들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영화예술의 저변을 넓힌다는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내실없고 형식적이고 별 재미도 없는 행사로 인한 대중의 실망, 영화 자체에 대한 관심 저하 같은 부작용이 불거질 우려가 다분하다. 올해부터 기존 영화제에 대한 지원 예산을 크게 줄인다는데 행여 그동안 건실하게 발전시켜온 명망 있는 행사가 위축되거나 타격을 받지 않았으면 한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이름뿐인 영화제를 가려내어 제대로 운영되는 문화행사 발전을 견인했으면 한다.

◆400여 종 문학잡지

인터넷, 영상매체 확산으로 문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현저히 감소하는 가운데서도 문학잡지는 속속 창간되고 있다. 주로 시 전문지가 주축을 이루는 가운데 어림잡아 전국에 400종 가까운 월간, 격월간, 계간, 반 연간 혹은 연간 문예지가 발행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영상의 어려움이 명확하고 일부 잡지를 제외하고는 원고료를 현금 대신 잡지 구독으로 대체하고 있음에도 계속적인 창간 러시의 저변에는 잡지 탄생 못지않게 많은 수의 문인들이 등단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수의 열성적인 독자를 제외하고는 잡지 발행부수 대부분이 문인 사이에서 소화되는 구조적 취약점이 심화된다. 공들여 만든 책이 번듯한 상품으로 자리 잡아 정상적인 유통·판매과정을 거쳐 최종소비자에게서 소화되어야 할 텐데 상품이 되기 전에 제품 상태로 임무를 마치는 아쉬운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멋진 공간을 채우려면

전국 곳곳에 문화 공간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특히 기초지자체 거의 모두 번듯하게 문화예술회관을 보유하고 있어 외형적으로는 주민들의 문화 향유의 기회가 크게 신장된 느낌이지만 우수한 하드웨어를 채울 소프트웨어 부족으로 공간 활용률이 그리 높지 않다. 나름 멋진 객석과 음향, 조명 시설을 갖춘 공연장이 들어섰지만 여기서 펼쳐질 콘텐츠는 턱없이 부족하다. 연극, 무용, 음악회 등이 지속적으로 공연되어야 하는데 소요 예산 미흡, 농어촌의 경우 급격한 주민 감소와 노령화로 인한 관객의 절대적 부족은 이런 공간의 공동화를 부추긴다.

전국 각지에서 개인이 조성하여 운영하는 소규모 공연공간에서 오히려 알차고 흥미로운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어 기대된다. 이제는 주민 스스로 여러 장르의 음악과 생활연극, 다양한 공연장르를 배우고 익혀 무대에 올리는 자급자족형 문화예술 공간 운영대안을 생각해볼 만하다.

문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데 외면적으로 풍성해 보이는 문화행사, 문화공간, 문화상품이 우리 곁에 있다. 10월 ‘문화의 달’을 보내면서 팍팍하고 고단한 일상을 보듬고 삶의 다채로움을 경험하게 해줄 진정한 문화의 힘을 실감하려면 지금 우리 주변의 문화여건, 유무형의 시스템에 대하여 전반적인 쇄신과 실용성을 높이기 위한 재정비가 필요한 듯싶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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