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벤치를 찾아서
아랍에미리트 연합을 구성하는 7개 토후국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두바이는 면적은 협소하지만 이런저런 신기록과 뉴스거리로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주로 최대·최신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한 기록 경신과 연관되어 있다. 세계 최고층 빌딩, 가장 화려한 호텔, 최대의 실내 수족관, 어마어마한 인공 섬 그리고 최대 규모 쇼핑몰에 이르기까지 척박한 환경에서 오일 머니로 이룩한 갖가지 신기록은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 그 기록이 깨질 때까지 유지될 것이다.
두바이 몰, 2008년 11월 완공되었는데 엘리베이터 95대, 150개 에스컬레이터는 이 상점가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쾌적한 냉방시설과 온갖 점포, 갖가지 볼거리로 두바이 관광 명소의 하나로 자리 잡았지만 방문객 입장에서 아쉬운 점은 앉아 쉴 수 있는 배려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카페나 식당, 물건을 사러 점포에 들어가면 되지만 통행인들을 위한 벤치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가급적 많은 소비 지출을 유도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 해도 규모에 비하여 벤치를 비롯한 휴게시설이 크게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도시와 하나가 되게 하는 벤치
백화점이나 상업 시설 대부분에서 구매 고객 이외의 내방객을 위한 배려의 시설을 찾기 힘든 요즘이다 보니 보도를 비롯하여 녹지 같은 공공공간에 들어서는 다양한 디자인과 컬러의 벤치는 반갑다. 특히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조성하는 벤치는 과거 투박하고 단조로운 획일적인 형태를 벗어나 인체공학적이고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미학적 요소까지 고려한 의미 있는 조형물로서의 가치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도시 일원에 벤치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를 살펴보면 지역 분위기나 문화, 나아가 그 도시를 좋아할 수 있을지의 여부를 가늠케 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행인이 부담 없이 쉴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사실은 일종의 ‘인권’과도 같다고 말할 정도로 현대사회에서 벤치는 여러 차원의 기능과 의미를 담을 수 있다.
근래 서울을 비롯한 도시 곳곳에 들어서는 개성 있고 독특한 디자인의 벤치는 삭막한 도시환경에 쉼과 여유를 담보하는 역할을 넘어 짧은 시간이나마 도시와 내가 하나가 되어보는 철학적 사유의 의미까지도 선물할 수 있을 듯싶다.
특히 대도시에서 틈새 공간과 자투리 공공장소를 활용한 벤치 조성은 환경과 복지는 물론 도시 이미지를 높이는 유효한 매체로 확산되고 있다. 단순히 나무나 쇠를 엮어 만든 종전의 벤치를 넘어 이제는 휴식은 물론 책상, 대화 그리고 경우에 따라 (여러 부작용으로 대체로 꺼리는 경향이 있지만) 누울 수 있는 여러 ‘기능성’까지 고려하게 되었다.
지자체 예산 확보가 여의치 않을 경우 지역민간단체 등이 주축이 되어 기증벤치 확보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업에서는 사회기여, 봉사 차원에서, 시민들은 단독으로 또는 힘을 합쳐 여러 기념할 만한 징표로 벤치 기증 캠페인을 벌일 만하다.
지나가다가 잠시 앉아 쉬는 용도를 넘어 벤치로 인하여 그 장소에 더 머물고 싶고 나아가 도시를 좋아하게 되면서 온전히 그 시간, 공간에 몰입할 수 있는 도시의 선물로서의 벤치를 상상해 본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