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7년간 몸담았던 언론계 생활을 접고 건설업계에 뛰어든 지 벌써 5년이 가까워진다. 대학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체육 분야를 공부했던 내게 건설이라는 분야는 참으로 생소한 것이었지만 나름대로 매력을 느끼고 열심히 노력해 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 언론이라는 것이 물론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취재를 하고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정보를 얻고 또한 새로운 분야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한다는 점에서 활동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의 시작에서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현장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언론 쪽보다는 건설 쪽이 훨씬 활동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른들에게 역마살이 꼈다고 핀잔을 자주 들었던 내겐 오히려 17년간의 일상이었던 언론계 쪽 보다는 건설이라는 분야가 더 적성에 맞았던 것 같다.그렇게 적성과 체질에 맞는 탓에 4년여 동안 건설 일을 해 왔지만 아직도 건설업계의 관행과 규범 중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적지 않다. 이미 오래 전부터 수많은 이들이 지적했던 건설업계의 일본어식 용어라든가 발주처에 따라 달라지는 각종서류와 서식들, 그리고 발주처마다 제각각인 설계변경의 기준, 획일화된 설계도면 등. 우선 일본어로 된 용어들이 가장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자재 이름에서부터 측량단위, 공사기법 등 건설업의 모든 분야에서 일본어나 일본어식의 용어들이 너무도 많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일본어를 쓰지 않고는 현장에서 소통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가로세로 5㎝의 각목은 ‘다루끼’, `10㎝는 `오비끼`라고 하고 콘크리트구조물을 하면서 모서리가 날카롭지 않도록 구석을 마감해주는 자재는 `멩끼`라는 일본어로 표현하고 있다.이밖에도 가로와 세로를 `요꼬`와 ‘다대’로 표현하는가 하면 구조물을 지지하는 지지철봉을 서포터라는 영어에서 변현된 ‘사뽀도’라는 일본어식 용어가 통용되고 있다. 발주처에 따라 요구하는 서류나 서식이 천차만별인 것도 문제다. 가장 간편하게 필요서류만 요구하는 일반 자치단체와는 달리 국토해양부나 대기업 발주공사에서는 공사계약에서부터 각종 공종의 공사의 시작과 공사중, 공사준공과 공사금 청구에 이르는 각 단계마다 자치단체에서 요구하는 서류의 두세 배는 기본이다. 그러다 보니 건설업체에서는 공사하는 것보다 서류를 맞춰주는 것이 더 힘들다고 볼멘소리를 할 정도다. 또 발주처마다 설계변경에 대한 시각과 기준도 다른 것도 업자들로부터 원성을 듣고 있다.원래 설계변경이라는 것이 당초의 설계대로 시공을 할 경우 문제의 소지가 있거나 살계당시 나타나지 않았던 것들이 시공과정이나 시공 전 준비과정에서 나타날 경우 시공사나 감리의 요청에 의해 발주처에서 가부를 경정하는 것인데 발주처마다 가부를 결정하는 잣대가 다르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힘 좋은 국토해양부의 경우 설계변경의 타당성만 있으면 변경설계금액의 과다와 상관없이 변경이 승인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일반 자치단체의 경우는 대부분 당초 설계금액을 넘어서는 설계변경은 당위성이나 필요성과는 무관하게 승인되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아마도 당초설계를 넘어서는 설계변경을 승인해 주게 되면 연말 감사에서 우선적으로 대상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담당공무원의 설명이다. 또 획일화 된 설계도 문제다.농어촌도로는 지난 정부까지만 해도 20㎝의 콘크리트로 포장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15㎝로 줄어든 것이다. 5㎝ 줄인 이유는 농어촌도로엔 기껏해야 경운기나 트랙터 정도가 다니기 때문이라는데 이는 농어촌의 실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내린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수확기에 각 논에서 나온 벼를 실어낼 때 오는 곡물수거차량은 수십 t 무게의 벼를 싣고 다니고 논이 산성화 돼서 객토라도 할라치면 적게는 차와 흙의 무게가 최대 50여 t에 이르는 화물차들이 15㎝로 포장된 도로를 다닐 수밖에 없다. 이밖에도 건설업계에는 고쳐져야 할 것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도 이를 고치려하는 이들이 없다는 것이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