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이다.장문의 글을 읽기만 해도 등줄기에서 땀이 흐를 것만 같은, 그런 여름이다. 그래서 단편소설.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르웨이의 숲 (혹은 상실의 시대)’로 잘 알려진 일본의 작가다. 워낙 많은 글들이 번역되어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서점에 가면 따로 코너가 마련되어 있을 정도. 요즘에는 1Q84 라는 장편 소설로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기도 하다.그의 단편소설 모음 중에서, ‘코끼리의 소멸’ 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단편소설답게 무척이나 간결하다. 마을의 동물원이 경영난을 이유로 폐쇄된 후, 그곳에 살고 있던 고령의 코끼리가 시의 재산으로 편입된다. 코끼리는 시에서 마련해 준 공간에서, 코끼리만큼이나 나이를 먹은, 늙은 사육사와 살아가다 어느 날 갑자기 ‘소멸’ 한다. 미스터리 소설이나 탐정소설처럼 사건(?)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아니고, 그 일이 어떠한 커다란 결과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광장의 무성했던 풀은 마르고, 주위에서는 마침내 겨울의 기척이 느껴질 뿐’이라고 소설 속 화자는 말하고 있다.허무하고 속절없는 이야기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코끼리의 소멸’을 읽고 있으면, 왠지 사라진 것이 고작 코끼리뿐이랴 싶은 마음이 든다. 거대한 만큼 존재감이 확실했던 그 무엇이 어느 날, 어느 때 인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경험을 누구나 해봤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슴이 아프지 않은 상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천천히 데워지는 물에서는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법이다.코끼리는 과연, 어디로 사라졌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