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 이후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욕실을 갖춘 아파트 보급이 급속히 확산되었고 이후 젊은 세대들이 모르는 사람과 함께 몸을 씻는 것을 그리 탐탁해하지 않으면서 공중목욕탕은 서서히 감소,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코로나 시기 몇 년 간 금기사항이었던 이른바 ‘3밀(密)’이 바로 공중목욕탕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직격탄을 맞게 되었다. 더구나 작년 12월 세종시 공중목욕탕 감전 사고는 더더욱 발걸음을 망설이게 한다. 100명 이상 수용, 찜질방 시설을 구비해야 ‘다중이용업소’로 등록되어 지자체와 소방 당국의 정기점검 대상에 포함된다는데 소규모 동네목욕탕은 여기에서 제외되어 있다.
인상폭이 가파른 유류, 수도료와 인건비 등 운영비 압박도 동네목욕탕 운영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는데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구청 등 지자체가 마련한 소규모 공영 목욕탕이다. 아직 그리 널리 보급되지 않았고 노인계층 위주로 이용 요일도 제한적이라 앞으로 주민 복지차원에서 보다 다양한 운영의 확대가 필요해 보인다. 소규모 동네목욕탕도 각기 특성화하고 쾌적한 근린 휴게시설로 재정비하도록 지원이 있어야겠다.
방치된 공간 활용 붐을 타고 영업을 중단한 옛 공중목욕탕 공간이 여러 용도로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주로 소규모 제조업이나 카페, 창고 등으로 이용되는데 카페의 경우 탈의실과 남탕, 여탕 자리에 테이블과 의자를 비치하여 추억과 감각을 자극하는 감성마케팅 매체로 이용되기도 한다<사진>.
인체에 유익한 성분의 온천수가 용출되는 온천 지역의 침체는 동네 목욕탕의 불황과 유사한 궤를 그리고 있는데 부존자원 활용과 상권 활성화, 인구 유입 차원에서 새로운 시각의 대안이 필요하다. 창녕 부곡의 대규모 복합휴양시설이 이미 오래전 문을 닫았고 울진, 지리산, 수안보온천의 여러 업소들도 경영난으로 폐업이 잇따른다.
국민관광지, 관광특구로서의 명성은 이미 빛이 바랜 가운데 수도권을 비롯한 교통이 편리한 입지에 (온천수 인정기준 완화로) 많은 온천이 개발되었고 이제는 단순한 목욕관련 시설만으로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특히 유성, 아산, 도고, 온양 등 전통 있는 대규모 온천이 밀집한 대전, 충남 지역의 온천 활성화는 도시 재생을 비롯한 지역 현안으로 떠올랐다. 은퇴 이후 노령층의 새로운 거주지로 온천지역은 매력적이다.
동네 공중목욕탕의 침체, 유명 온천 지역의 불황을 ‘현대사회와 목욕복지’라는 화두로 접근해 볼 수 있겠다. 아파트는 물론 단독주택에서도 어느 정도 욕실시설이 갖추어진 이상 밖에서는 단순히 때를 씻는 목욕 개념을 넘어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이완하고 휴식을 제공하는 차원의 시설과 서비스 제공이 필요하지 않을까. 수질 좋은 유성온천 지역이 관광 특구로 지정된 지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식당, 주점, 호텔 등 유흥 위락시설 이외에 양호한 온천수를 만끽할 수 있는 복합 첨단 휴식, 휴양, 레저 시설은 드물다. 탕치(湯治)개념을 접목한 전천후 온천욕-휴양-진료 시스템을 도입하여 일하면서 휴가를 즐기는 워케이션 형태의 다목적 온천 활용방안을 고려할 만하다.
2000여 년 전 고대 로마인들이 조성한 높은 수준의 목욕, 휴식 공간과 그 구조는 지금 봐도 놀랍다. 당시 건축, 토목기술과 디자인으로 이룩한 각종 목욕시설은 물론 머나먼 거리를 수도교(水導橋)로 연결하여 물을 끌어 공급했던 치수능력이 돋보인다. 심신의 이완, 해방을 추구하는 인간심리에 부응하는 목욕 문화를 일구어 놓은 선구성을 이제 새롭게 벤치마킹해도 좋을 듯싶다. 과도한 향락과 사치, 부패와 도덕적 타락이 로마제국 멸망의 한 축이 되었던 점을 경계하면서.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