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위대한 무대, 그 곳엔 삶이 있다

대형 공연장에 비해 자리도 불편하고 무대도 작은 소극장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사정이 허락한다면 화려한 무대, 뛰어난 기술 등을 갖춘 대작을 보고 싶어할 것 같은데 말이다. 소극장을 찾는 이들은 하나같이 그곳에서 느끼는 매력이 다르다고 말한다. 배우와 가까이서 눈을 맞추며 함께 호흡하고 소박한 무대를 지켜보면서 보다 쉽게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는 공연은 소극장만이 가진 무기라고. 금강일보는 2024년 연중기획 ‘이제는 소극장이다’를 통해 지역 소극장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이제는 소극장이다   
② 성장순 별별마당우금치 극장장
성장순 별별마당우금치 극장장.
성장순 별별마당우금치 극장장.

지하에서 한적한 시골로 이사도 수차례
단원·시민들의 손으로 현 보금자리 일궈

배우 숨소리까지 전달 가능한 현장성에
시대적 이야기 담아 삶의 문제 생각게 해
“시민들이 쉽고 편하게 즐기는 공간이자
후배들도 도전하는 모두의 공연장 되길”

◆어쩌다 극장장

처음부터 목표지점만을 향해 무작정 달리는 사람은 일찍 지쳐 나가 떨어지기 십상이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란 말처럼 묵묵히 걷다 보면 어느새 목표에 도달한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성장순, 그도 그랬다. 배우로 시작해 그저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다 보니 어느새 극장과 관련된 모든 일을 책임지는 극장장이 됐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무대에 목마른 배우다. 성 극장장이 본격적으로 연극에 빠지게 된 것은 우연히 대학 때 본 마당극패 우금치의 창단작품 ‘호미풀’이었다.

“고등학교 때 무대에 서고 누군가 나를 바라봐 주는 것에 희열을 느꼈어요. 우연히 본 우금치의 창단 연극을 통해 이슈였던 쌀 수입개방으로 인한 농촌 문제를 접했는데 인상깊게 다가왔죠. 1991년 그 길로 입단했어요. 오랜 기간 우금치에 몸 담고 있다 보니 배우인 저도 극단을 함께 만들고 있더군요. 극장장으로 좋은 공연을 올림으로써 관객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면 배우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끼곤합니다. 배우로 무대에 섰을 때 재미까진 뛰어넘진 못하지만 어쨌든 제가 극장장으로 있는 동안 좋은 일이 많이 벌어졌으면 좋겠어요.”

산내 골령골 학살 사건을 담은 연극 '적벽대전'. 우금치 제공
산내 골령골 학살 사건을 담은 연극 '적벽대전'. 우금치 제공

◆모두가 함께 일군 우금치

그가 우금치와 함께 걸어온 지 어느덧 33년이다. 강산이 여러 번 바뀌고도 남을 시간에 우금치엔 좋은 일도 많았지만 현재의 대전 중구 대흥동에 자리잡기까지 8번이나 이사를 다녀야 했단다. 파란만장한 생활을 끝내기까지 단원과 시민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도 어디론가 떠도는 생활을 지속해야 했을지 모른다.

“1990년 중구 선화동 호수돈여고 근처 지하에 5년간 있었어요. 시끄럽다는 민원을 듣지 않고 연습에 매진하기 위해 하소동 포도밭에 건물을 지어 11년을 보냈죠. 그리고 폐교로 이사가 5년, 평송청소년문화센터 3년간 상주단체를 했는데 그 기간이 끝나자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다시 한적한 시골로 들어갈까 하다가 결국 연극의 접근성을 위해서라도 사람들과 소통하는 도시에 있어야겠더라고요. 2015년 대흥동 낡은 교회건물을 매입했는데 안은 벽돌과 모래가 쌓여 있을 정도로 열악했죠.

우리 보금자리를 우리 손으로 만든단 생각에 좋지 않은 사정에도 단원들은 선뜻 적지 않은 비용을 내놓았습니다. 또 우금치 지킴이를 자처한 시민들도 모금 행렬에 동참했어요. 그중 열흘간 1000만 원씩 모두 1억 원을 보내 온 이관용 선생님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문화예술을 꽃피우는 일에 벽돌 한 장 얹고 싶다’는 말을 건네셨죠. 감사한 마음을 담아 2층 마당극장의 이름을 ‘관용’이라 붙였습니다. 현재 관용극장은 변형이 가능한 블랙박스 형태로 150~170석 정도 된답니다.”

우리 신화를 다룬 연극 '할머니가 들려주는 우리신화'. 우금치 제공
우리 신화를 다룬 연극 '할머니가 들려주는 우리신화'. 우금치 제공

시민과 함께 일군 별별마당 우금치에 대해 성 극장장의 사명감은 남다르다. 그는 우금치가 시민 누구나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소극장은 객석이 많지 않은 만큼 그에 따른 수익을 얻기 어려운 곳이지만 그럼에도 티켓 값을 높게 책정하지 못한다.

“소극장의 매력은 배우의 숨소리까지 생생히 느낄 수 있는 현장성입니다. 배우의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소극장에서 시작한 유명 공연들이 큰 공연장으로 무대를 옮기곤 합니다. 그 이유는 객석 단가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예요. 수익구조만 생각한다면 배우나 무대 세팅 등 많은 부분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극장이 객석 수에 연연하지 않고도 수익창출을 할 수 있는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많이 버는 사람이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는 식으로 말이죠.”

◆모두가 찾을 수 있는 공연장

우금치는 연극의 가장 큰 특성인 동시대성을 최대한 활용했다. 문화예술로 사회에 환원한다는 소극장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은 물론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일대기를 담은 연극 ‘하시하지’, 산내 골령골 학살 사건을 담은 ‘적벽대전’ 등 역사극이 대표적이다. 우리 신화를 다룬 ‘할머니가 들려주는 전통 이야기’ 같은 전래동화, 반전(反戰), 노인, 환경 등 폭넓은 소재도 다뤘다. 연극이란 삶의 문제를 확산시켜 주는 것이란 우금치만의 특별한 생각이 담긴 대목이다.

성장순 별별마당우금치 극장장.
성장순 별별마당우금치 극장장.

“예술가는 사회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가장 정치적일지 모릅니다. 우금치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폭 넓게 ‘국가란 무엇인가’로 정의할 수 있겠네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2000년 만들어진 ‘쪽빛황혼’이에요. 고령화가 심각해짐에 따라 파괴되는 공동체의 현실을 꼬집은 작품이죠.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작품이 꾸준히 시즌제로 이어질 수 있게 힘쓰고 좋은 작품을 발굴해 무대에 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별별마당 우금치가 잘 알려져 마당극패 우금치만의 공연장이 아닌 모두의 공연장이 돼야 하죠. 젊은 후배들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거나 색다른 시도를 하고 싶을 때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장소로 풍성하게 만들어 가겠습니다.”

김고운 기자 kgw@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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