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8일부터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PA인력도 심폐소생술·약물 투여 가능
현장선 업무 범위·책임 등 모호해 혼선

전공의 집단이탈이 17일째 계속되며 의료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는 7일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공의 집단이탈이 17일째 계속되며 의료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는 7일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속보>=정부가 ‘숙련된 진료지원(PA) 간호사’를 활용해 의료현장을 떠난 전공의의 공백을 채우겠다고 밝혔다. 이들의 업무 숙련도가 충분하다는 판단으로 응급환자에 대한 심폐소생술과 약물 투여 권한을 부여하겠다는 것인데 현장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직종별 업무 및 책임 범위가 불명확해 근본적인 방안이 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의료현장의 피로감이 짙어지는 가운데 시민사회와 노동, 환자의 측면에서 사회적 논의를 실시하는 한편 PA간호사 합법화에 대한 이야기도 대두되고 있다.<본보 6일자 2면 등 보도> 

◆의료현장 혼란 가중

의료계와 정부의 강대 강 대치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보건복지부는 7일 미복귀 전공의를 대체하기 위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발표했다. 8일부터 시행되는 방안에는 간호사의 숙련도와 자격 등을 구준해 업무 범위를 설정하고 간호사 업무범위 조정위원회에서 협의된 업무 외의 업무 전가·지시는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관리·감독 미비로 사고가 발생할 경우 법적 책임은 의료기관장에 귀속된다. 앞서 제기됐던 업무 범위, 간호사 법적 위험성 등의 문제를 보완한 대책이다. 이에 따라 의료현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인력인데 공식으로 합법화되지 않은 PA간호사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이들은 실질적으로 의사 업무를 상당 부분 수행하면서도 법·제도적 지위를 인정받을 수 없었는데 정부의 시범사업 발표를 통해 한시적이지만 전문적인 의료행위까지 허용되는 것이다. 정부가 PA간호사를 의료공백을 메울 최후의 보루로 꺼냈지만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우려의 분위기가 읽힌다. 지난 2000년대 초를 기점으로 대학병원 등에서 약물처방, 봉합 등 진료보조를 해 온 PA간호사는 법적으로 정해진 업무범위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계속된 의대 정원 증원에 실패하자 전공의가 부족한 분야에서 PA간호사는 의료현장의 필수 인력으로 자리잡았는데 병원에 따라 임상병리사 등이 맡는 경우도 있다.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정부 방침에 따라 전공의들이 담당하던 업무가 PA인력에게 무방비 상태로 전가되고 있다. 진료 거부에 따른 수술실 축소 운영, 일부 병동 폐쇄, 입원 제한 등으로 병상가동률이 50% 이하로 떨어지면서 우리는 원치 않는 무급휴가와 응급오프로 내몰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차라리 PA간호사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업무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간호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정부가 이번 전공의 사태로 일시적이긴 하나 PA간호사라는 사실상 의료공백을 메울 최후의 카드를 꺼냈기 때문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전국적으로 1만 명이 넘는 PA 간호사가 활동하는 것으로 추산했는데 이들이 합법화되면 의료공백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조혜숙 보건의료산업노조 대전충남지역본부장은 “전공의 인력부족으로 PA간호사가 점차 증가하기 시작했다. 지역의 대학병원에도 100명 정도의 PA간호사가 근무하고 있다”라며 “그간 간호법과 전공의 사태 등으로 PA인력 합법화에 대한 요구가 미뤄졌었다. PA간호사가 의사 업무를 하고 있으나 법의 보장을 받지 못했다. 이번 사안을 계기로 드러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에 대응에 날선 비판을 이어갔다.

대한의사협회 비대위는 “전공의가 없다는 이유로 PA간호사를 통해 해결하려 하고 있다. 의료인의 면허범위가 무너지면서 불법이 판치는 곳으로 변질될 것”이라며 “전공의 파업은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 의지에 의한 포기다”라고 비판했다.

◆사회적 대화 촉구

의사 진료거부를 둘러싼 강대 강 대치가 이어지자 사회적 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7일 기자회견을 열고 필수의료·지역의료·공공의료 위기 해법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다. 이들은 “고통받는 환자와 국민의 입장에 선다면 선(先) 진료 정상화, 후(後) 사회적 대화가 올바른 해결책이다. 정부와 의사단체가 지금의 강대 강 대치를 중단하고 환자와 국민을 위해 진료를 정상화하겠다는 결단을 밝힌 후 지체없이 사회적 대화를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필수의료·지역의료·공공의료 위기 해법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즉각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고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계획을 국민 앞에 공개적으로 발표해야 한다. 말로만 대화하겠다면서 의사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지 말고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화의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의사와 의사단체들도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하고 모든 집단행동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 이러한 결정에 따라 전공의들은 진료거부를 멈추고 환자 곁으로 돌아가 조속한 진료 정상화에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지금의 의료재난 상황이 더 이상 길어지면 안 된다. 국민의 피해와 고통을 멈춰야 한다”고 간곡히 호소하면서 “의대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둘러싼 강대 강 대치는 누가 누구를 굴복시켜야 하는 치킨게임이 아니다. 총선에서 표를 얻기 위한 정치게임으로 악용되어서도 안 된다. 필수의료·공공의료·지역의료 위기 해결은 국민 생명을 살리기 위한 국가 과제다”라고 강조했다.

김지현 기자 kjh0110@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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