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읽었던 만화 ‘무덤’의 무서웠던 기억은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다. 동네 만화방에서 보고 온 날부터 몇 달 동안 밤만 되면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였는데 얼마 뒤 영화 ‘무덤에서 나온 신랑’ 광고 포스터까지 거리에 나붙으면서 공포는 가중되었다. 이 후유증은 중학생이 된 뒤 1960년대 우리나라 호러 영화의 한 획을 그었다는 ‘월하의 공동묘지’가 나올 때까지 이어졌다. 그 시절 무덤, 묘지에 대한 인식은 외떨어진 지리적 입지처럼 공포스럽고 으스스한 느낌으로 온통 채워져 있었다. 이런 분위기가 다소나마 바뀌게 된 것은 ‘공원묘지’라는 이름의 공간이 생겨나기 시작한 즈음인 듯싶다. 공원이라는 평화스러운 어감은 종전의 두려움과 거부감의 상당부분을 씻어낼 수 있었다. 묘지, 무덤은 더 이상 무섭거나 을씨년스러운 경원의 대상이 아니라 이승의 삶을 마친 고인들이 평화로운 영면에 든 또 다른 쉼터라는 의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외국에서는 이미 여러 세기 전부터 도심지, 주택가 옆에 대규모 공동묘지가 조성되어왔다. 자연스러운 추모의 장소로 삶과 죽음이 어깨를 나란히 공존하는 곳, 먼저 저세상으로 간 사람들을 만나 묘소를 돌아보고 두런두런 무언의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의 공간으로 자리 잡아왔다.
그 사이 화장이 대세가 되었다. 봉분 대신 유골을 봉안하는 납골당으로 대체되어 소요 면적도 넓지 않고 고인의 삶과 개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념품이나 조형물 장식이 돋보이는 가운데 산소, 무덤에서 추모공원, 메모리얼 파크 등의 이름으로 진화하는 동안 우리 사회 장의문화는 크게 선진화되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작가, 참여운동가였던 장-폴 사르트르(1905∼1980)가 동반자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와 함께 묻힌 파리 중심가 몽파르나스 묘지<사진>에는 세상을 떠난 지 4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연중 헌화와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0세기를 풍미한 석학, 예술가의 유택으로는 다소 협소해 보이는 자그마한 묘소는 평범한 파리 시민 바로 곁에 자리 잡고 있는데 특히 묘비에 찍힌 무수한 입술 자국은 그를 향한 애호가들의 열정적인 흠모와 사랑의 흔적을 보여준다.
이제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파리 페르 라셰즈 묘지는 살아있는 문화박물관으로 세계 각국 숱한 문화예술인, 정치가를 비롯하여 생시에 다양한 활동을 벌었던 각계각층 인사들 그리고 파리 시민들이 잠들어 있다. 그중 미국의 가수이자 시인, 배우였던 짐 모리슨(1943∼1971)의 묘소는 이 곳의 간판 명소로 오래 전부터 자리 잡아왔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 파리에 체류하면서 이 묘지를 둘러봤다는 모리슨이 묻혀있는 곳을 보러 열렬 팬들은 묘지가 문을 닫을 무렵 들어와 숨어 있다가 밤새 묘소 앞에서 열광적인 추모의 시간을 보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제는 매장이 거의 사라지고 화장 후 유골을 봉안하는 문화가 정착된 만큼 우리도 생전에 걸출한 활동으로 이름을 남긴 유명인물 특히 문화예술, 스포츠 분야 인사들이 잠들어 있는 곳을 문화공간으로 조성하여 업적을 후대에 전승하는 풍토를 조성해 봄직하다. 2022년 서울 망우 역사문화공원이 기존 안장된 유명인사들을 중심으로 재단장했는데 범위를 더 넓혀 각급 지자체를 비롯하여 유관 기관, 단체가 주축이 되어 해당지역에 연고가 있는 분들의 유해를 모셔와 테마 묘지를 만들어 예술적인 조형물과 스토리텔링을 가미하였으면 한다. 각 지역 국립현충원에 모신 호국영령들과는 다른 분야에서 헌신한 분들의 생애와 업적을 밝고 즐겁게 기억하며 후세에 전할 수 있는 새로운 묘지문화를 적극적으로 권해 본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