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대 교수

자본(資本, 조선:밑천, Capital)이라는 개념의 등장은 약 500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인류의 수백만 년 역사에 비춰 볼 때 그 역사는 매우 짧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은 어느덧 우리 생활을 지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본은 사전적으로 축적된 부, 즉 많은 양의 화폐나, 토지·공장과 같이 생산의 밑거름이 되는 생산 수단을 말한다. 또, 자본은 돈(인간의 노동을 구매할 수 있는 권한)을 더 많이 획득하고자 할 때 사용되는 부(富:인간의 노동을 구매할 수 있는 권한이 축적된 상태)를 의미하며, 곧 자본은 돈뿐만 아니라, 생산 주체가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재화나 용역을 생산·제공) 소비하는 모든 자원(토지, 설비 등)을 상호 간 이익이 되는 관점에서의 거래됨을 의미한다.
인류 역사에서의 ‘거래(去來, transaction)’는 인류 초기부터 존재했다. 원거리 이익을 추구하는 상인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BC 2000년 메소포타미아에서 활동한 ‘고대 아시리아 상인’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로마 제국은 더 발전된 형태의 상업을 발전시켰고 비슷한 형태의 광범위한 네트워크는 이슬람 국가들에서도 발견되었다. 하지만 자본의 본격적인 등장과 자본주의화 되는 것은 유럽의 중세 후기와 르네상스 시대에 구체화 되었다.

15C 중부유럽 사회는 귀족과 신부, 수공업자와 농부, 그리고 ‘상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농민과 수공업자들은 귀족과 신부들 소유의 땅에 거주하는 대가로 농산물이나 생필품을 만들어 세금으로 바쳤지만, 상인들은 물건을 사고파는 일을 했기 때문에 귀족에게 세금을 낼 필요가 없었다. 상업의 초기 형태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수도원 영지 그리고 이탈리아의 독립 도시 공화국에서 몇몇 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주로 은행, 보험, 회계 및 다양한 생산 및 상업적 관행의 혁신에 근간을 두고 있었다.
최초의 자본가라면 아마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상인들이지 않을까 한다. 이들은 지중해를 기반으로 중국이나 인도, 아랍에서 차, 비단, 도자기, 보석 등 유럽에서 볼 수 없는 진기한 물건을 싸게 구입해 유럽 각지의 왕·귀족들에게 비싼 값에 되팔아 큰 이익을 남기며 본격적인 ‘자본축적의 시대’를 연 것이다. 그들은 처음으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돈을 사용한 사람들로서, 이렇게 사용된 돈을 자본이라고 불렀으며, 이를 자본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바로 이 시기를 우리는 ‘르네상스 시대’라 부르고 있다.
당시 기존에 없던 새로운 생산요소적 개념인 자본이 등장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럽 전역에는 상인들이 넘쳐나게 되었고, 이에 귀족들은 통행세나 자릿세 명목으로 상인들에게서 세금을 더 거둬들이려는 귀족들의 횡포는 상인들로부터 원성을 사게 되었다. 이에 귀족들의 횡포에 분노한 유럽의 상인들은 당시 가장 힘이 센 영주였던 잉글랜드 왕 헨리 8세를 부추겨 다른 귀족들과의 전쟁을 벌임과 동시에 상인들은 전쟁 중에도 무기 공장을 세워 적군 귀족들에게도 무기를 팔아 이익을 챙겼다. 이로 인해 상인들의 군수산업은 나날이 번창하였다. 결국엔, 군소 귀족들의 몰락으로 이어져, 권력이 왕에게 집중되는 거대한 왕국의 등장, 즉 ‘근대 국가’가 탄생하였다.
이후 서구의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부를 더욱더 공고하게 축적하기 위해 국가 권력과 결탁하였고, 또한 다른 대륙의 국가들에까지 자본 침탈의 손길을 뻗치게 되는, ‘대항해의 시대’로 본격적인 ‘세계적인 거래의 시대’ 그리고 ‘제국주의 시대’의 서막을 알리게 되었다. 그 결과 약 1억 명 이상의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팔아 엄청난 이익을 챙긴 서유럽 국가들의 노예무역, 무기상들의 배 만 불려 준 수많은 전쟁, 그리고 강대국들의 ‘세계 식민지 분할’이라는 인류 역사에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또한 ‘자본주의’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기원은 18C 유럽에서 발생한 산업혁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산업혁명은 기계화와 획기적인 생산성 향상으로 경제적 부와 자본의 중요성이 커지게 되면서 자본주의 체제의 발전을 도모했다. 그전까지의 사회구조는 귀족과 농민 등의 특정 계급이 사회와 경제의 지배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산업혁명 이후 자본 소유자와 기업가가 생기면서 이들이 주요한 경제주체가 되어 경제 활동을 주도하게 되었다.
18C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생산요소는 토지와 노동만을 보았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자본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졌고, 이에 따라 일반적인 생산요소의 범주에 토지와 노동뿐만 아니라 자본이 포함되었다. 이들 생산요소는 생산요소시장에서 거래되며 기업은 가계로부터 생산요소를 구매하고, 가계는 기업에게 생산요소를 판매하였다. 따라서 생산요소의 가격은 기업의 입장에서는 비용이 되지만 가계의 입장에서는 소득의 원천이 되는, 즉 ‘부의 축적’이 우리의 일반 가정에서도 이뤄지게 된 것이다.
자본은 사유재산을 바탕으로 하여 노력에 따른 결과를 자기 것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주의 체제는 모두가 잘살기 위해 경제 활동에 힘을 기울이게 되고, 자유로운 경쟁 원칙은 개인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어 생산 기술의 발달하여 경제 활동이 발전할 수 있었다. 또한,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함으로써 자유로운 생산과 소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발달은 빈부의 격차를 만들어 냈고, 물질만을 중요시하게 되어 돈에 눈이 먼 욕심 많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최근엔 실업과 경제불황이라는 아쉬운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까지, 인간의 욕망은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지만, 지나친 욕망은 전쟁과 노예제도, 차별,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 등 인류와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향은 인간의 물질적 욕망에서의 해방이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따라서 인간의 절제되고 균형 잡힌 ‘조화로운 욕구’는 앞으로 우리가 갖추어야 할 자세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