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벽면, 건물 셔터, 열차와 차량을 비롯하여 조금의 공간이나 여백마다 어지럽고 알 수 없는 그림과 기호, 숫자와 알파벳 글자를 난삽하게 그려 넣는 ‘그래피티’. 대체로 어수선하고 외설적인 느낌으로 미학적 즐거움은 멀어지고 불쾌감을 자아내는 이 국적불명의 형상은 대부분 급한 시간에 쫓기듯 칠해놓고 떠나는 까닭에 전반적으로 산만하고 언짢은 기분을 안겨준다. 도시미관의 이단아로 떠돌고 있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곳곳에 번지고 있는 이 행위는 얼마 전 서울 경복궁 벽면 낙서를 계기로 전국적인 관심사로 다시금 떠올랐다. 용의자를 검거했다지만 복원에 드는 비용과 시간, 그 기간 동안 통행의 불편함,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지역 특성상 국가와 도시 이미지 저하 등 이런저런 손실이 막대하다.

그래피티는 주로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하여 낙서 형태로 짧은 시간에 그려놓고 종적을 감추고 있어 사유재산이나 공공재산 등에 이런 작업이 가해질 경우 재물손괴죄에 해당되어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되지만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저변을 사회병리적, 심리학적으로 분석할 만하다. 한국에 체류하거나 여행 중인 외국인들의 행태가 적지 않으리라는 추정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자신을 돋보이려 하는 잠재의식, 사회를 향한 불만에서 비롯되어 조화와 안정을 깨트리는 데서 얻는 쾌감일 것이라는 일반적 해석만으로는 부족한 듯싶다. 형법상 재물손괴죄의 경우 3년 이하 징역이나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는데 주로 야간이나 인적이 뜸한 시간대에 이루어지는 탓에 적발이 쉽지 않다. 그래피티가 우려되는 벽면에 특수물질을 발라 그림이나 낙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하지만 모든 공간에 도포할 수 없을뿐더러 비용측면에서도 여의치 않은 편이다.
다른 나라 특히 유럽에서는 그래피티에 대한 상반된 시선이 존재한다. 사회에 불만을 품고 기존 질서에 반기를 드는 체제이탈의 형상물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있는 한편, 작가들이 아틀리에에서 캔버스에 담는 예술 행위로서의 그래피티도 있다. 이런 작업을 프랑스의 경우 ‘프레시오니즘’이라는 이름을 붙여 하나의 유파로 간주하여 정식 갤러리에서 개인전, 그룹전, 회고전 등 전시회를 열기도 하는 등 다양한 시각과 평가를 보이고 있다.

캔버스 그래피티, 아틀리에 그래피티 조형 작업은 기존 제도권 회화에 대한 나름의 반항이나 다른 시선으로 사회와 인간, 문명을 바라보면서 종전과는 판이하게 전개되는 디지털 시대 세상의 흐름과 문화를 해석하는 여러 감성을 형상화한다. 대담한 색채와 구도, 상식과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메시지 전달 시도 등 나름의 조형성을 추구하는 21세기 아방 가르드라고 보는 일부 관점도 있다.
사회를 향한 불평불만을 아무 공간에서나 조악한 그림과 문자로 표출하는 행위와는 구별하여 예술적 조형성을 추구하려는 그래피티 장르의 건전한 육성은 필요하다. 날이 갈수록 다변화하고 복잡해지는 현대인의 감성과 정서, 의식세계를 제도권 여러 미술장르와 함께 그래피티 영역에서도 일정 부분 형상화하여 담아냈으면 한다.
<문학평론가,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