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깨지지 않는 의문 중 하나가 인간은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먹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먹을 것을 찾아 초기 인류가 걸었던 길들에서 인류 문명이 발생한 것을 보면 인간은 살기 위해 먹었던 것 같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 줄서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먹기 위해 사는 것 같기도 하다.
살기 위해서든 먹기 위해서든 생명을 지탱시키는 필수요건은 음식이다. 이것을 위해 인류는 떠돌이 생활을 멈추고 야생의 동물을 우리에 가두어 길들이고, 들판의 씨앗을, 열매를 채취하고 저장과 파종을 반복하는 2000년의 긴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1년 전의 인류에게 땀 흘리지 않고 떠돌며 먹을 것을 찾는 편이 나았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고된 노동이 동반된 정착 생활을 통해 안전과 풍요로운 삶을 선택했다. 농사를 짓기 위한 공동체 생활로 조직과 계급, 경제개념이 생기며 오늘의 도시와 국가와 같은 문명사회의 체계를 만들었다.
농업 시작과 문명사회로의 발전이 낳은 풍요는 인류에게 욕망을 꿈틀거리게 했는지 모른다.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정착지와 식량을 빼앗는 전쟁이 시작되고, 발전된 문명사회는 기술을 앞세워 대륙을 넘어 다른 문명 세계를 말살하고 식민화하며 부를 챙겼다. 식민지의 수많은 향신료와 다양한 식재료들은 대륙을 이동하며 퍼져나갔고 산업혁명 이후 그 속도는 거세졌다.
철도와 선박, 냉동 기술의 출현으로 도시의 인구는 급속하게 늘어났고 음식의 산업화도 빨라졌다. 오늘날 도시 사람들은 인근 지역에서 식재료를 구하거나 직접 재배해 먹던 방식에서 벗어나 대형 식품회사들이 제공하는 값싸고 다양한 식재료를 구입해 먹을 수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이제 세상은 직접 음식을 만들지 않아도 비용을 지불할 능력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음껏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얼마나 편리하고 행복한 세상인가. 주문만 하면 문 앞까지 먹을 것을 배달하는 세상에 산다는 것이….
그런데 우리는 정말 먹는 것으로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는 걸까.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존중 없이 단지 먹을 것을 위해 수없는 전쟁을 일으키고 수익을 위해 거대한 숲을 밀어 벌이고, 수만 마리의 동물들을 비좁은 우리에 가두어 기르는 것을 외면하면서 아프리카의 어린 노동력을 착취해 만든 달콤한 초콜릿을 먹으며 사는 것으로 인류만의 행복을 찾는 것이 온당한가. 우리가 먹는 음식은 자연이 준 혜택과 누군가의 수고에 의해 식탁에 올려진 것이다. 씨를 뿌리고, 기르고 가꿀 수 있는 자연환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거기에 그것을 음식으로 만드는 사람들의 정성이 더해져야 하는 긴 여정의 결정체가 음식이다.
어떤 것은 첫 생명의 젖이 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먹는 것일 수 있다. 어떤 이에게는 간절한 소망이 담긴 음식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에게는 자신의 가치를 빛낼 자산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음식들이 매년 전 세계적으로 10억 톤 넘게 쓰레기로 버려진다. 우리나라에서도 하루 1만 6000톤의 음식물 쓰레기가 배출된다. 처리 비용만 한 해 8000억 원 이상이 든다고 한다. 음식을 버린다는 것은 수고한 이들의 숭고한 노동을 버리는 것이다. 수없는 햇빛과 물과 화석연료를 버리는 것과 같고 먹을 기회를 놓친 수많은 사람들의 귀한 생명을 외면하는 일이기도 하다.
음식은 우리 입으로 들어오기 전 인류보다 먼저 이 땅에 존재했다. 아프리카 땅에서 먹을 것을 찾아 수백만 킬로미터를 걸어 아메리카 땅의 끝까지 걸었던 인류 생존의 시작이었기에 앞으로도 인류의 생명을 잇는 탯줄이다. 그래서 잘 먹고 잘산다는 것은 밥 한 톨 그냥 목으로 넘기지 않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