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자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하지만 예체능에 종사하는 이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타고나는 재능. 이건 절대 넘을 수 없다고 한다. 불편한 진실이다. 그렇다고 노력이 필요치 않다는 건 아니다. 재능이 충만한 이들이 붙는다면 승부는 땀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팝페라 가수로 활동하는 성은지(32·여) 씨는 뛰어난 재능을 갖춘 데다 누구보다 열심히 하려는 노력하려는 자세까지 가졌다. 불공평하게도 약간의 운도 가졌다. 그래서 그는 완벽한 커리어를 가진 가수처럼 보이지만 그에게도 걱정은 있다. 문화 불모지인 고향 대전에서 후학 양성의 어려움이다.

성은지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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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부러운 타고난 재능

TV에서 잘나가는 가수가 어렸을 적을 얘기하면 백이면 백 똑같다. 남들의 눈에 띄는 걸 좋아했고 특히 무대 같은 곳에 오르면 자연스럽게 노래 불렀다고. 거기서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를 듣지 않으면 절대 인사하지 않았단다. 성 씨도 그랬다. 어디서든 노래하고 춤추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고 박수를 받지 않으면 노래와 춤을 멈추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노래와 춤을 잘하는 아이로 학교에서 유명했다. 유명한 합창대회 등에서도 출전만 하면 1등이었다. 남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걸 너무 좋아했기에 교내 발표회 같은 게 있으면 자진해서 손들어 강단에 섰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그의 재능은 계속됐다. 연예인 등용문 중 하나인 한 댄스대회에 참가해서 입상했고 노래도 포기하지 않으려 별도 레슨도 받았다. 약관의 나이 땐 뮤지컬로 유명한 대학교에 들어가 2학년 때 뮤지컬 ‘사랑의 묘약’ 주인공으로도 캐스팅됐다. 고작 2학년이 같이 응시한 선배를 제치고 주인공에 합격했단 소식은 당시 굉장히 충격적이고 이는 문화 잡지에도 실리기도 했다. 재능이 흘러넘쳤던 성 씨는 공부도 적성이었을까. 활동하다 시험 기간이 되면 다시 책을 잡았고 A 이하를 받아본 적 없었다.

성은지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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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부터 관심을 좋아했어요. 노래와 춤 모두 잘했고요. 중학생 때까진 병행하며 배웠지만 진로를 고민하는 고등학생 때 노래를 선택해서 대학교에 진학했죠. 거기서도 부끄럽지만 일이 잘 풀렸고요. 노래만 하기엔 또 춤을 놓기 힘들더라고요. 대학원에선 뮤지컬을 전공했어요. 이후엔 저에게 수업을 듣고 싶어 하는 학생도 많았죠. 이들에게 레슨도 했고요.”

◆전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코로나19

지인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던 중 기획사 관계자 눈에 띄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돈을 받고 노래하는 프로가 됐다. 행사의 여왕 장윤정과는 눈인사 할 정도로 전국을 누비며 여러 무대에 섰다. 하늘길에 올라 해외에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노래했다. 워낙 재능이 뛰어나 매월 그의 일정은 한 달 내내 꽉 찼었다고. 워낙 뛰어난 재능, 실력, 여기에 공부까지 잘하니 그야말로 팔방미인이었다. 항상 꽃길만 걸을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지 않았다. 전세계를 약 3년 동안 괴롭힌 코로나19가 창궐한 것이다. 졸업이 한 학기 남았을 때였다. 물론 코로나19 이전에 감염병이 없었던 건 아니다. 중동호흡기증후군인 메르스가 국내에서 기승을 부렸기 때문에 성 씨는 ‘길어야 6개월 가겠지’라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첫 확진자가 국내에서 발생하고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감염병은 퍼져나갔다. 지역 하나가 봉쇄되는 소식도 언론에서 들렸다. 자연스럽게 문화 활동은 위축됐고 성 씨 역시 걱정하기 시작했다. 졸업하면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려고 했는데 전세계를 팬데믹으로 몰아넣은 코로나19가 장벽이 된 것이다. 걱정은 현실이 됐다. 모든 문화 활동을 정부가 규제하기 시작했다. 그가 늘 서던 무대마저 사라졌다. 그래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예전부터 학생을 가르쳐왔기에 무대 대신 고향에서 후학 양성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자고 마음먹었다.

성은지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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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프라 더욱 확충되길”

무대에 서는 게 학생에게 레슨을 해주는 것보다 수익적으로 더 유리했지만 그가 평소에 제자를 가르치는 것에 소홀히 했다면 약 3년 동안의 코로나19란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가기 쉽지 않았다. 3년 동안 그는 학생을 가르치는 것에 집중했고 제법 적성에 맞았단다. 그에게 수업을 듣고 싶어 하는 학생이 매일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그런데 상당히 아쉬운 것도 많았다. 대학교를 다니던 서울에선 쉽게 노래와 춤을 가르칠 수 있는 공간을 접하기 쉬웠는데 대전에선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생각한 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일종의 사랑방 형태였다. 누구나 언제든 노래나 악기를 연습할 만한 장소를 만들어보자. 그래서 최근 서구 갈마동에 ‘Unmute music studio’를 열었다. 이름대로 절대 조용하면 안 된다는 뜻으로 항상 음악이 끊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원하는 수준의 스튜디오이길 바라는 마음에 제법 많은 돈을 썼지만 성 씨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고향에 내려와서 많은 걸 느꼈어요. 서울에선 내가 연습하고 싶을 땐 언제든 연습실을 빌려서 쓸 수 있었는데 여긴 그렇지 않죠. 아직도 문화인프라는 서울이 최고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전에 꼭 우리만의 사랑방을 만들고 싶었고 작은 꿈을 최근 이뤘어요. 대전도 상당히 큰 지역이잖아요. 내 고향이 더 많은 예술인을 육성할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해요.”

워낙 재능이 많았고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아서인지 그의 스튜디오 역시 벌써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는 스튜디오의 불이 24시간 꺼지지 않게 운영될 예정이다. 당연히 24시간 음악도 흘러나오도록 할 생각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음악인이 모여 하나의 사랑방이 되길 원한다.

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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