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을 단어 하나와 문장 하나로 표현하는 것은 쉬우면서도 어렵다. 청소년기와 중장년기의 중간에 서있는 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때로는 희망과 꿈, 미래 등과 관련된 단어가 잇따르기도 하고 그 어떤 연령대보다 감성과 개성을 중요시하기도 하는 이들이라고 칭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가 다른 삶을 살고 다르게 자라왔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보니 평범하고 평탄한 것도 청년의 개성이 되는 시대다. 방황을 겪은 뒤 굴곡없는 삶을 꿈꾸는 박기용(26) 씨가 그렇다.

◆성장통을 겪다
누군가는 젊은 이들을 두고 놀고 먹기 바빠야 한다고들 한다. 박 씨도 그러한 질문에 동의한단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초·중학교 시절 노는 것을 참 좋아했다고 한다. 혼자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에 나가 킥 연습에 몰두하기도 하고 노래방에서는 노래 부르는 재미를 깨달았다. 이후에는 친구들과 노는 재미도 알아 버렸다.

그러나 어른들은 노는 것도 일이라고 했던가. 그는 대학입시가 다가오면서 위기감을 느꼈다. 고등학교에 올라서야 처음 펜을 잡고 책상에 앉아 있는 연습을 시작했다. 사실 모범생이 아닌 평범한 학생에 지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결국 그는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통 아닌 고통을 많이 느꼈다. 그러나 고통은 그를 성장시키면서도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드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대학교 입시를 준비하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 흔한 매점 한 번 안 가고 쉬는 시간에도 책만 붙잡고 있을 정도였죠. 그러나 그때의 힘든 기억이 오히려 굴곡없는 삶을 살고싶다는 저를 만들었습니다.”

◆한 번 더 방황
누구나 자신만의 인생의 로드맵이 있고 이에 따른 종착지가 있기 마련이다. 어린이들은 과학자와 축구선수를 꿈꾸고 어서 어른이 되고 싶다는 등 말이다. 마찬가지로 청년들도 꿈에 그리던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도서관을 다니고 토익 학원을 끊는 등 많은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박 씨에게도 많은 고민이 있었다. 그는 교복을 입었을 당시 방황 아닌 방황을 겪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헤매다 보니 되려 평탄한 삶을 원했단다. 평범한 직장에 다니면서 번듯한 직장인이 되고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기 시작했다.

다만 대학교를 입학하고 나서는 그러한 고민을 잠시 잊기도 했다. 평범한 대학생들처럼 가무를 즐기고 인맥을 늘려가는 재미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는 생각이 바뀌었다. 정확히 말하면 흔히 철이 들었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대학생을 졸업할 즈음에는 인턴 생활을 이어가고 기업 곳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그 결과 박 씨는 올해부터 집배원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지금부터 시작이란다. 가장 큰 목표이자 처리하고자 했던 ‘취업’을 해결했기 때문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청년답게도 취업이라는 퀘스트를 깨니 다시 방황이라는 기로에 섰다.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게 정말 고충입니다. 원래도 내 밥벌이 하나는 책임지고 살자는 목표가 있었는데 오히려 취업에 성공하니까 목표가 사라진 것이죠. 다음 단계를 위한 길을 모르겠다는 얘기입니다. 다음 목표는 결혼을 할까 생각하는 중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다음 목표의 예시 중 하나이고, 사실은 아직도 혼란스럽습니다.”

◆방황 속 행복
박 씨는 그렇게 염원하던 취업에 성공했다. 여기에 삼시세끼 잘 먹고 지금 이순간을 행복하다고 느끼는, 소박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우선되는 핵심이자 가치를 찾는 데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여전히 인생의 최종적인 목표를 찾지는 못했다. 100세 시대에 다급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20대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박 씨는 현재 집배원의 삶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어느 일이 안 그러겠냐마는 차를 모는 일과 직업이 고된 것은 사실이다. 인식도 그렇고 육체적 강도도 말이다. 그러나 박 씨는 고됨 속에서 따뜻함을 찾았다. 자신 스스로도 오랫동안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찮게 잡고 있는 운전대가 내심 자신을 또다른 행복과 목표로 이끌어 줄지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집배원으로서 몸이 힘든 것은 사실이죠. 체력적으로 고된 일이라고 느껴지긴 합니다. 그러나 이 일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저에게 음료수나 먹을 것들을 챙겨주거나 준비해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아직 세상은 살만 하구나 느끼고 저 스스로도 남들에게 선의를 베풀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재영 기자 now@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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