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균 중국산동사범대학 한국학연구소장

한국말을 배우는 외국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존칭어일 것이다. 전세계 수많은 말과 언어가 있지만 한국말만큼 철저히 어른, 아이 구별하는 말도 없다. ‘가다’는 ‘가시다’, ‘오다’는 ‘오시다’, ‘보다’는 ‘보시다’, ‘하다’는 ‘하시다’라고 하는 것처럼 표현자체가 다르다. 말끝에 ‘~요’를 붙이거나 단순 어미 변화 정도라면 그래도 괜찮다.

‘밥’을 ‘진지’, ‘아프다’를 ‘편찮다’, ‘먹다’를 ‘드시다’, ‘자다’를 ‘주무시다’와 같이 아예 말 자체가 다른 경우도 있다. 익숙한 한국 사람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외국인이 체감하는 한국어의 경어는 반드시 외우지 않으면 쓸 수 없는 매우 어려운 말들이다.

산동사범대 한국어과 사무실에서 경험한 일이다. 한국문학을 전공한 중국인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학부 2학년 학생이 들어왔다. 중국인 교수에게 ‘니하오’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내게도 ‘안녕’하며 한국어 인사를 했다. 순간 중국인 교수는 ‘안녕’이 아니라 ‘안녕하세요’라고 해야지 하면서 정중하게 목례 자세까지 취했다. 학생도 그대로 따라하며 인사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나갈 때도 중국인 교수에게는 상하 관계없는 ‘짜이지앤’ 간단히 인사했고 내게는 ‘안녕히 계세요’라며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했다. 간단한 경험이지만 여기서 한국어 교육은 곧 상대를 존중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효와 예절 교육이란 큰 교훈을 얻었다.

아마 중국인 교수도 처음엔 한국어의 존칭어와 그에 따른 예법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존칭어와 예법이 함께 따르는 한국말에 강한 인상을 받았을 것이고 거기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를 지키지 않은 학생의 말과 행동이 순간 눈에 띄었고 곧바로 시정하도록 몸소 실천하며 유도한 것이다. 중국인 교수가 한국인의 예법을 설명할 때 반드시 하는 말이 있다. 절대로 어른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술을 마실 때에는 고개를 돌려 마신다, 어른이 말할 때에는 끼어들지 않는다 등등. 이렇듯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은 철저히 효와 예절을 강조하는 한국인의 태도를 함께 곁들인다. 경어체 한국어에 이미 이런 예법이 들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태권도가 그렇듯 한글도 항상 예절과 함께 간다.

산사대에서 경험한 또 다른 일이다. 건물도 다르고 접촉기회가 많지 않은 상과대학 교수 한 분이 대뜸 한국어과 학생이 유난히 예절 바르고 윗사람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필자가 속한 학과가 한국어과라서 아마 예우 차원에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전체 학생수가 3만 명이 넘고 학과도 70개 가까이 되는데 굳이 몇 명 안 되는 한국어과를 지목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외국어 관련 학과도 한국어 아니고서도 영어, 일어, 러시아어, 아랍어 등 여러 학과가 있는데 굳이 한국어과 학생들을 꼭 집어서 말한 건 본인의 경험에서 나왔다. 한국과 한국어를 잘 아는 분이기에 가능한 말이고 또 한국어를 몸으로 이해한 한국어과 학생들의 남다른 예절 실천에서 나온 결과라 생각한다. 혹 이분이 요즘 한국의 달라진 세태를 경험한다면 그래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세종대왕이 처음 한글을 만든 것은 단순 소통이나 지식 창출을 위한 게 아니었다. 패륜범죄를 목도하고 이 땅의 모든 백성들이 인간다운 도리를 다하기 위한 인간 만들기 차원이었다. 바른 품성과 예절을 배워야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확신에서 한글을 만든 것이다. 백성을 바르게 바른 소리로 가르쳐야 한다는 한글의 다른 표현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설명한 데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간 글자가 어려워 배우지 못해 바르지 못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효와 예절을 배우면 바르게 살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후속 조치로 효와 관련된 책들을 한글로 번역하고, 수많은 효자, 효부, 효녀를 선발해서 상을 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글날이 10월 효의 달과 함께 있는 것도 단순 우연은 아닐 것 같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