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문학평론가

조선시대 대표적 유학자인 동춘당 송준길의 11대손이자 향토사학자인 송성빈 선생이 송백헌 선생과 함께 엮은 ‘은진송씨 가문의 할머니들 이야기’는, 은진송씨 대종회 송태영 회장이 오늘날 은진송씨가 있기까지 가문을 지켜준 훌륭한 할머니들의 업적을 발굴 정리해 후손들이 귀감으로 삼도록 송백헌 선생에게 부탁해 진행했으나, 송백헌 선생의 갑작스런 타계로 미완성으로 남은 초고를 송성빈 선생이 보완 교정 편집해 2021년에 발간되었다. 이 책은 고려말에서 조선조로 이어온 은진송씨 600여 년의 가문 역사에서 가문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69명의 훌륭한 할머니들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송성빈 선생은 2023년에 발간한 회고록 ‘왕따 도련님의 해방일지’에서, 겉으론 부유하고 평온한 듯하나 대문 안에서는 파란만장했던, 아픈 가족사를 고백했다. 그의 아버지는 명문가의 후손답게 동네에서는 지도층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실천했으나, 집안에서는 인색하고 이기적이며 무책임한 가장으로, 이중적인 삶을 살았다. 그래서 그의 가장 큰 바람은 ‘가족끼리 서로 신뢰하며 사랑이 넘치는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처절하고 서러운’ 삶을 살면서도 폭군 남편에게 순종하고, 5남매를 사랑으로 감싸며, 주위 사람 모두를 따뜻하게 포용하는 대인이었다. 살림 잘하는 여자라며 아버지가 들인 소실과 그 자식들까지 너그럽게 포용하였고, 심지어 소실이 암에 걸리자 정성을 다해 병시중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보살님으로 불렸다. 이런 어머니의 헌신과 지극한 사랑이 가문을 지탱해 주고, 그를 훌륭한 향토사학자로 성장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아버지의 번듯한 양반 행세와 가족에 대한 폭력적인 공격성으로 드러난 가부장제가 가족은 물론 아버지 자신조차 패배자로 만든 데 반해, 지배성보다는 따뜻한 관계와 조화를 중시해 누구든지 포용하고 정성으로 보살핀 어머니의 모성애는 가문과 가족을 평화롭게 살려냈다. 이런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이 그에게 여성적 덕목을 중요한 삶의 가치로 여기게 하고 가문의 할머니들 이야기를 엮을 수 있게 했다. 그는 가정을 집으로 비유해, 부인은 주춧돌, 아버지는 기둥, 자식은 지붕에 해당해, 부인이 집을 나가면 부모, 남편, 자식 3대가 의지할 곳을 잃어 집안이 망하지만, 남편이나 자식이 집을 나가면 어려워도 집안은 유지되듯이, 가정에서 여성의 중요성은 절대적임을 강조한다.

선조인 동춘당 선생을 잘 배우고 모든 행동규범을 동춘당에서 구하라는 뜻에서 이당(以堂)이란 아호를 스승인 한학자 이종락 선생께 받은 송성빈 선생은, 동춘당이 보여준 삶의 유연성과 원만함을 본받아 보수적인 가부장제의 벽을 뛰어넘어, 시어머니가 보여준 보살의 마음과 헌신의 자세를 이어받은, 현명하고 야무진 아내 진순이 여사의 헌신적인 내조로 자신의 꿈을 펼쳐 나가고 있다. 어머니와 아내에 대한 고마움으로, 그는 여성적 가치를 자신의 중요한 삶의 원리로 삼아, 능력과 효율성보다는 조화와 관계 맺음을 중시하는 삶을 살고 있다. 송성빈 선생의 여성적 덕목 살리기가 더욱 확산 발전하여 생태계 위기와 인종 간, 민족 간, 계층 간, 성별 차별이 극복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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