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장 하나 살리는 게 지역 경쟁력 키우는 일”
지역 소극장 시스템 미흡한 탓에
자체 제작보다 대관 공연에 의존
서울 작품 빌려와 관객수 확보

지역 제작 콘텐츠 상품화하려면
체계적 마케팅 시스템 구축 시급
공공기관의 적극적 지원도 필요
내년 타극장과 협업 새 활로 모색

▲ 주진홍 이음아트홀 대표

대형 공연장에 비해 자리도 불편하고 무대도 작은 소극장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사정이 허락한다면 화려한 무대, 뛰어난 기술 등을 갖춘 대작을 보고 싶어할 것 같은데 말이다. 소극장을 찾는 이들은 하나같이 그곳에서 느끼는 매력이 다르다고 말한다. 무대 가까이서 눈을 맞추며 함께 호흡하고 소박한 무대를 지켜보면서 보다 쉽게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는 공연은 소극장만이 가진 무기라고. 금강일보는 2024년 연중기획 ‘이제는 소극장이다’를 통해 지역 소극장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연극인의 오랜 꿈 ‘소극장’

1983년 대전에서 연극을 시작했을 때는 공연할 곳을 찾으려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일이 다반사였다. 2014년 개관한 이음아트홀 주진홍(58) 대표의 회상에는 아련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당시 대전의 유일한 공연장이었던 가톨릭문화회관은 연초부터 대관 전쟁이 벌어지기 일쑤였단다. 지역 예술인들에게 공연장은 그저 꿈같은 이야기였다.

“대전시민회관이 있긴 했지만 선택지는 제한적이었어요. 대극장은 너무 컸고 소극장은 무대가 좁았죠. 4일 대관해도 실제 공연은 2~3일뿐이었어요. 입소문이 나도 다시 공연할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시민회관은 나중에 보수공사를 통해 소극장 무대를 확장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어요.”

한정된 공연 기간은 예술가들의 발목을 잡았다. 공연이 호평을 받아도 추가 공연은 불가능했고 이는 제작비 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 악순환의 시작이었다. 계속해서 서울에서 검증된 작품의 라이선스만 따오길 반복해야 했고, 그러다보니 지역만의 콘텐츠를 만들 여유는 없었다. 그러다가 탄생한 게 2005년 극단 드림과 드림아트홀이었다.

“연습실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조명과 객석을 갖춘 작은 공간을 만들었죠. 소박한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결정은 제 인생을 바꿔놓았어요. 장기공연이 가능한 소극장은 안정적인 관객 유입을 가능케 했고 지역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고나 할까요?”

◆‘드림’에서 ‘이음’으로

드림아트홀은 예상 밖의 성공을 거뒀다. 작은 무대였지만 관객과의 거리가 가까워 더 깊은 교감이 가능했다. 한 달 공연을 해도 매진이었고 그 얘기는 곧 지역 관객들이 우리 이야기를 기다린다는 확신이라고 그는 믿었다. 이 경험은 더 큰 꿈을 꾸게 만들었다. 2014년 이음아트홀의 출발이 여기부터다.

“드림아트홀에서의 경험을 살려 더 나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음아트홀은 처음부터 지역 예술의 허브를 목표로 했습니다. 연극뿐 아니라 뮤지컬, 음악, 무용 등 다양한 장르를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죠. 우리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남의 작품을 빌려오는 대신 자체 제작 비율을 높였습니다.”

어느덧 10년, 이음아트홀은 이제 유성구와 서구를 무대로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코로나19와 경제침체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관객들의 꾸준한 사랑으로 버티고 있다. 이음아트홀이 드림아트홀의 꿈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주 대표는 이음아트홀이 더 많은 예술가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꿈꾼다.

“1983년 극단 마당에 입단해서 드림아트홀, 이음아트홀까지를 생각해보면 참 엊그제 같은데. 일단 소극장은 현실이 됐고 이곳에서 관객 분들이 대전의 이야기를 만끽했으면 좋겠어요. 처음에는 작은 꿈이었지만 많은 이들의 응원과지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소극장, 큰 숙제를 마주하다

꿈대로 모든 게 현실이 됐으면 좋겠다만 인생은 그리 호락하지 않다. 역시나 소극장 현장의 가장 큰 고민은 관객 확보다. 공연 제작자와 기획자 간의 파트너십이 부재한 상황에서 극단들은 제작부터 홍보, 마케팅까지 모든 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전문 기획자들이 이미 검증된 작품을 섭외해 홍보하고 매출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정착된 반면 대전은 시장 규모가 작아 이러한 협업 구조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의 오랜 고민거리다.

“연극의 3대 요소가 희곡, 배우, 관객인데요. 관객은 곧 기획과 마케팅의 영역입니다. 대전은 시장이 작다 보니 전문 기획자와의 협업이 쉽지 않죠. 극단과 소극장이 모든 걸 떠안다 보니 전문성이 떨어지고 관객 확보는 더욱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어요.”

이음아트홀은 현재 상·하반기 두 번의 자체제작 외에는 대부분 대관공연으로 운영되고 있다. 어찌됐든 어려움은 타개하라고 오는 것 아닌가. 연출가 출신인 주 대표는 내년은 기획 강화와 타 극장과 연계 공연 등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여기에다 공공 영역의 적극성만 따라준다면 금상첨화다. 현재 대전의 공공지원은 단순 창작 지원에 그치고 있어 지역 공연의 상품화와 관객 개발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이 시급한 실정인 탓이다. 특히 대전예술의전당과 같은 공공기관의 마케팅, 홍보 인력이 지역 제작 콘텐츠의 상품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두 가지입니다. 민간에서는 공연자와 기획자의 긴밀한 파트너십이 필요하고 공공에서는 지역 공연을 제대로 된 문화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해요. 단순한 창작 지원을 넘어서 대전의 문화 콘텐츠를 제대로 된 상품으로 키워내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소극장의 봄을 기다리며…

소극장은 지역 문화예술의 마지막 보루다. 대형 극장에서는 시도할 수 없는 실험적인 작품들, 신진 예술인들의 첫 발걸음, 그리고 시민들과 가장 가까운 문화적 소통이 소극장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대다수의 소극장들이 연간 자체제작마저도 허덕이며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어서다.

“소극장은 문화예술의 씨앗을 키우는 온실과 같습니다. 이곳에서 젊은 예술인들이 자라고,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고, 관객과의 첫 만남이 이뤄지죠.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소소한 공연도 이곳에서 시작됩니다. 소극장이 사라진다면 지역의 문화적 다양성도, 예술가들의 꿈도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죠. 결국 소극장은 도시의 문화적 생명력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이음아트홀은 내년부터 기획 역량 강화와 타 극장과의 협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주목할 만한 변화의 조짐도 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소규모 공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입소문 효과도 나타나고 있어서다. 작은 규모지만 차별화된 콘텐츠로 충성도 높은 관객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소극장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이다.

“우리는 지금 변화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소극장이 살아남는 것은 단순히 공연장 하나를 지키는 게 아니라 도시의 문화적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죠. 대전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이 이곳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뻗어나가는 그날까지 우리는 이 작은 무대를 지켜낼 것입니다. 소극장은 여전히 꿈꾸고 있으니까요.”

글·사진=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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