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80년대 우리나라 외국문학 연구의 관심사로 유럽 여러 문예이론이 백가쟁명으로 개진된 적이 있었다. 내공 깊고 학문적인 체계나 설득력을 갖춘 경우도 있었고 더러 피상적인 요약 차원의 학설도 적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당시 여러 이론, 주장들이 외국문학연구의 층위와 외연확산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 정교한 이론과 논리 전개로 공명을 주었던 사례의 하나로 ‘낯설게 하기’라는 개념을 포함한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이론이 많은 관심을 끌었다.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익숙한 일상보다 낯설고 새로운, 그리하여 현실로부터 일정한 유격이 있는 대상에서 미학적 가치를 느낀다는 사실에 주목한 이론이다. 특히 예술이 현실적인 이름다움을 추구하거나 특정 이데올로기를 연역하는 도구로 머물지 않고 보다 현실적이고 실천력 있는 효과를 도출하는 데 유용하다고 주장하였다. 사물이나 상황을 기존의 인식, 고정관념과는 다르게 느끼도록 하는 예술방식인 ‘낯설게 하기’는 주목할 만하다. 문학이론으로서의 강력한 영향이나 지속력은 크지 않았다 하더라도 지금 우리가 나날이 마주하는 일상의 여러 광경, 현상에서 직간접으로 ‘낯설게 하기’를 만날 수 있다.
‘낯설게 하기’를 일상의 사물과 연결하여 새로운 느낌과 경이로움을 이끌어 냈던 초현실주의자들의 시도가 벌써 한 세기 전의 일이다. 마르셀 뒤샹의 ‘샘’이라는 작품이 이내 떠오른다. 하루에 몇 번씩 대하는 변기가 예술작품으로 실물 그대로 전시되었을 때 그 낯섦은 우리 머릿속에 각인된 낯익은 물체가 하나의 독자적인 사물로 느껴지며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이런 새로운 감성은 20세기를 거쳐 21세기로 넘어와 더 넓고 깊게, 나날의 삶에 접속되고 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타고 퓨전음악을 들으며 퓨전음식을 먹는다. 종전 창고나 정미소 또는 공장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을 공간에 들어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일 자체가 예전에는 생소하였던 낯섦을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사례가 된다. 중국음식점에서 갈비탕을 먹는 모습을 보았다. 어쩐 일인가 싶었는데 메뉴에 갈비탕, 설렁탕 등이 들어가 있었다. 주문하는 사람이 있어 계속 메뉴에 올라 있을텐데 아마도 캔으로 공급되는 식재료를 데워내는 모양이었다. 고객의 취향에 따른 수요공급이겠지만 낯선 일들은 한두 가지가 아닌 듯싶다.
열흘 전 어느 결혼식에 다녀온 지인의 전언에 의하면 그 혼인은 신랑 혼자 치렀다고 한다. 재미동포인 신부 없이 신랑 측 혼주와 신랑만 로비에서 하객을 맞고 예식 없이 바로 식당으로 안내, 음식을 대접하였다. 미국에 가서 신부와 함께 다시 결혼식을 치를 예정이라는 안내도 잊지 않았다는데 신랑 또는 신부 없이 열리는 혼례는 처음 보는 낯선 일이었다. 이런 결혼 같은 낯섦은 그리 흔하게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나날이 생소해지는 갖가지 현실을 목격하는 일이 잦아질 것이고 그 강도 또한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
‘낯설게 하기’가 타성과 무료한 반복으로 무미건조해지는 일상을 일깨우고 삶에 흥미와 기대를 부여할 신선한 자극제가 되어왔고 앞으로도 될 수 있을지, 또는 안정적인 현실에 틈입하여 균형과 조화를 깨트리는 생뚱맞은 기제로 작용할지 단정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첨단 디지털 사회가 가속화될수록 사회와 일상 곳곳에서 ‘낯설게 하기’의 빈도와 영향력은 계속 증가하리라는 사실이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