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 화서제야시장

대만국립고궁박물관, 국립중정기념관, 국립국부기념관, 용산사(龍山寺)를 ‘타이베이 4대 관광코스’라고 하는데, 용산사는 1738년 청나라 고종(건륭제) 4년 푸젠성(福建省)에서 건너온 청 상인들이 세운 도교 사원이다.

차없는 거리
차없는 거리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에 제자백가의 한 사람인 노자(老子)가 도덕경에서 무위자연 사상을 주장하면서 도교(道敎)가 형성된 이후, 세상이 어수선했던 후한 말 장각(張角)의 태평도와 장릉(張陵)의 오두미도로 백성들의 신봉이 크게 늘어 남북조시대에 북위의 구겸지(寇謙之; 365~448)가 유교와 불교를 절충하여 발전시킨 민족종교다. 중국은 후한 때 불교가 전래되어 위~수~당 때 크게 융성했지만, 당 제국 성립 후 도교가 황실의 보호를 받고 크게 발달했다. 당 말 5대 혼란을 거치면서 송나라 이후 불교보다 도교가 국가의 보호를 받았다.

용산사정문
용산사정문

도교에서는 노자를 교조로 모시고. 일월성신(日月星辰)과 같은 자연신을 숭상했으나, 후대에 오면서 우주 창조신인 원시천존(元始天尊)부터 온갖 귀신들까지 다양한 신들을 7등급으로 나눠서 위패를 모셨다. 이런 점에서 도교는 일본에서 전통적인 토속신 이외에 국가나 지역에 큰 공적을 세운 인물을 신봉하는 신도(神道)와 비슷한 점이 많다. 또, 도교의 사원을 도관(道館)이라고 하는데, 도교가 불교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기 때문에 도관도 불교 사찰과 비슷하지만, 실제는 일본의 신사(神社)와 더 가깝다.

본전 입구
본전 입구

한반도에는 624년 고구려 영류왕 때 도교가 수입되고, 통일신라 때 당나라 유학생들이 도교를 소개한 내용이 최치원의 계원필경집 등에도 기록됐다. 그리고 고려 예종 때 이중약(李仲若)의 건의로 궁궐에 복원궁(福源宮)을 짓고 국가가 재초를 집행하면서 궁궐 북쪽에 소격전(昭格殿)도 세웠다고 한다. 그렇지만,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은 조선 태조는 소격전을 제외한 다른 도관은 모두 폐지하더니, 세조 때 소격전을 소격서(昭格署)로 격하시켰다. 그나마 중종 때 조광조 등 신진 사림파의 반대로 혁파되었다가 기묘사화 이후, 중종의 모후(母后)인 정현왕후 윤씨의 요구로 소격서를 부활시켰지만, 임진왜란 이후 선조 때 완전히 폐지되었다.

경내의 인공폭포
경내의 인공폭포

종교를 아편이라고 배척하는 중국공산당의 영향으로 대륙에서는 종교시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대만은 주민의 35%가 불교, 33%가 도교 신자여서 도교 사찰이 많고, 오늘날 전진교(全眞敎), 정일교(正一敎)로 분파되었다.

경내 중앙의 조형물
경내 중앙의 조형물

대만에는 용산사라는 이름을 가진 사찰이 많은데, 그중 타이베이시 완화구(萬華區)인 용산사가 가장 유명하다. 이곳을 ‘맹갑 용산사(艋舺 龍山寺)’라고도 하는데, 맹갑이란 청 상인들이 대만 북단 단수이(淡水)에서 단수이강을 따라 섬 깊숙이 들어와서 원주민과 교역하던 선착장을 작은 통나무배(艋)와 긴 통나무배(舺)들이 모인 곳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청의 상인들은 다른 나라와 교역하면서 거친 바다를 항해에서 무사함과 재물을 많이 벌기를 기원하여 17~18세기 일본 나가사키나 베트남의 호이안 등의 화교 거주지에 도교 사원을 세웠는데, 이곳에서는 삼국지의 관우를 재물의 신 관성제군(關聖帝君)으로 가장 숭배했다.

본전
본전

대만에서 임가 화원을 관람한 우리 가족은 시내로 들어오는 지하철 MRT 5호선 푸중역(府中站)을 타고 4번째 정거장인 롱산쓰역(龍山寺站)에서 내렸다. 롱산쓰역에서 지상으로 나오면 길 건너에 용산사가 있다. 타이베이 시내에서 곧장 용산사로 곧장 간다면, MRT 4호선(中和新蘆線: 노란색) 과 5호선 판남선(板南線: 군청색)을 갈아타는 시먼역(西門站)에서 내려도 된다. 시먼과 용산사 일대는 타이베이에서 가장 먼저 도심이 형성된 번화가로서 용산사를 비롯하여 청 시대의 보피랴오 역사거리(剝皮寮歷史區; BobPiLiao)를 재현하고,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뱀술 등 온갖 엽기식품을 파는 화시제 야시장(華西街 夜市場), 전통 한약재를 파는 약초 골목 등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옷, 신발, 액세서리, 화장품 상점이 즐비하고, 영화관과 맛집도 많아서 현지인은 물론 관광객이 밤낮으로 붐벼서 ‘자동차 없는 보행자거리’로 지정되었다.

본전 관음보살상
본전 관음보살상

용산사의 입장료는 무료이다. 그런데, 아무리 현대화되었다고 해도 정문에 가로 현판처럼 용산사임을 밝히는 LED 전광판이 번쩍거리는 모습은 약간 우스꽝스럽다. 경내는 불교 사찰의 가람배치 법칙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마당 중앙에 조각상, 오른쪽에는 인공폭포가 마치 테마공원 같다. 맨 앞의 본전과 뒤편의 후전, 그리고 사찰을 빙 둘러선 전각들이 담장 역할을 하고 있는데, 전각마다 벽면에 생생한 그림이 가득하다. 또, 지붕과 추녀에는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용·봉황·기린 등 상서로운 동물들을 매우 과장되고, 섬세하게 조각했다.

후전
후전

본전에는 불교의 주존인 관세음보살과 문수보살·보현보살 등이 있지만, 관세음보살상이 가장 유명하다. 2차 대전 당시 일제의 식민 통치를 받고 있던 주민들은 용산사를 피난처로 삼고 모여 있다가 어느 날, 모기떼가 너무 극성이어서 주민들이 모기를 피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날 미군이 용산사를 총독부 건물로 착각하고 공습했다고 한다. 용산사는 포격으로 모든 전각이 무너졌지만, 관세음보살상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고 온전한 것을 보고 주민들은 관세음보살상이 영험하다고 믿으면서 용산사가 유명해졌다고 한다. 연합군의 공습으로 크게 파괴되었던 용산사는 1957년 지금과 같이 복원했다.

후전 전경
후전 전경

후전에는 전각이 마치 연립주택처럼 나란히 지어졌는데, 칸마다 도교에서 신으로 모신 여러 신상이 있다. 맨 오른쪽 전각부터 삼국지의 관우상과 유비상이 있는데, 장사하거나 부자가 되려고 하는 시민들은 관우를 재물의 신으로 믿고 관성제군을 찾아 기도하고, 몸이 아픈 사람들은 삼국지에서 의술로 유명했던 화타선사(华陀仙师)를 찾아와서 빌고 있다. 이런 모습은 인천의 차이나타운에 있는 의선당(義善堂)에서도 엿볼 수 있다.

복덕정신
복덕정신

용산사는 교통이 편리한 시내 번화가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좋아서 시민들이 언제든지 자신이 기구하는 신상 앞에서 향불을 켜고 기도하는데, 용산사 입구에서 입장객에게 향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또, 반달 모양의 나뭇조각 두 개도 나눠주는데, 이것을 윷처럼 던져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오면 소원을 들어주는 것으로 믿는다고 한다. 이처럼 도교가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뿌리내린 생활 종교인 것을 알 수 있는데, 용산사는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유·불·선교를 종합한 도교 사원을 볼 수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또, 우리 불교사찰은 너무 근엄해서 위화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신도들의 시주 이외에 사찰마다 입장료를 받고, 또 사찰 경내에서도 별도로 성보박물관 입장료를 받는 등 꼬박꼬박 수입을 챙기는 것과 좋은 대비가 된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천상성모
천상성모
관성제군(관운장)
관성제군(관운장)
인천 차이나타운 의선당
인천 차이나타운 의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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