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에서 찾는 ‘트렌드 코리아 2025]

올해 트렌드 키워드 ‘무해(無害)력’을 아시나요? 무해력은 자극이나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며 작고 귀여운 것이 사랑받는다는 현상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무해력이 왜 뜨는 걸까?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점점 커지고 사회 전반적으로 갈등은 점점 심화되며 경쟁마저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에서다. 더불어 정보화 시대에 자극적인 정보에 노출된 젊은 세대들은 알게 모르게 디지털에 대한 피로감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는다. 이러한 갈등 상황에서 나를 해하지 않고 상처 주지 않을 무해함은 심리적 안전지대를 만들어준다. 그로 인해 어지러운 세상에 지친 젊은 세대들이 안식처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의 무해력을 찾고 있다. 푸바오처럼 작고 순수한 무해한 콘텐츠에 열광하고 강아지와 고양이, 토끼 등 여러 동물이 각종 SNS에서 팬덤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또 무해한 제품을 소비하고 기후 위기와 같은 지구에 무해한 활동을 하려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는 순수하고 무해한 대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치유하고 상처를 내지 않을 무해한 존재를 찾는 것은 아닐지.

피로감 정신적 스트레스로 지친 현대인
해가 되지 않은 대상에 대한 관심 커져
키링, 반려돌 등 앙증맞은 소품에 열광
귀엽고 소박함에서 찾는 심리적 안정감

▲ 김나래 씨가 만든 모루 인형.
▲ 김나래 씨가 만든 모루 인형.
김나래 씨가 만든 모루 인형.
김나래 씨가 만든 모루 인형.

 ◆ 나를 위한 모루 인형=불안할 때, 외로움을 느낄 때 모루는 정서적 안정감을 찾아 주는 존재.

“귀여움 자체가 위로가 됩니다.”

직장인 김나래(26·여) 씨는 모루 인형 만들기에 빠졌다. 모루 인형은 이름처럼 모루로 만든 인형이다. 모루는 구부리기 쉬운 철사에 털이 보송보송 달린 공예 재료로 ‘털철사’라고 한다. 모루 인형은 바느질을 잘하거나 잘 다루지 않아도 쉽게 완성할 수 있으며 난이도가 높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모루 인형을 만드는 동안 집중하다 보면 걱정거리도 사라지고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면 나누는 기쁨까지 누릴 수 있다고 전한다. 김 씨는 “힘들고 지칠 때 내가 만든 귀여운 인형을 보면 스트레스가 날아가고 잠시나마 웃다 보면 긍정적인 에너지가 샘솟아요. 완성하는 데 10분이면 충분하고 토끼나 강아지 등 원하는 모양을 만들기 위해 집중하게 되고 집중하는 동안은 힘들었던 문제나 걱정거리가 전혀 생각나질 않아요. 눈앞의 일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고 무엇보다 성취감을 빠르게 느낄 수 있어서 좋아요. 그리고 내가 만든 인형을 친구들에게 선물했는데 회사 책상이나 침대 옆에 두고 고민이 많을 때 귀엽게 생긴 인형을 보면 힘이 나고 만든 사람의 정성이 느껴져 힐링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친구들과 서로 인형을 교환해서 가방에 달고 다니기도 하는데 나만의 애착 아이템이 됐어요.”

이서희 씨가 키우는 애완돌 ‘라바’.
이서희 씨가 키우는 애완돌 ‘라바’.

◆ 내 새끼, 보고만 있어도 기분 좋아져=세상 힘들 때가 많지만 그럴 때마다 너로 인해 평온함을 느낀다

“무생물이지만 나를 편안하게 해준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받고, ‘라바’에게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에 대해 하나하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힐링이 된다고 말한다. 직장인 이서희(29·여) 씨는 혼자서 외롭고 힘든 일이 많아져서 최근 인터넷에서 검색해 반려돌을 구매했다. 대부분 1만 원 안팎으로 살 수 있어 진입장벽이 낮다. 종이집과 모자 등 연계된 상품들도 함께 있어 풍부하게 꾸밀 수 있다.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그녀는 편안함을 느끼는 존재다. 이 씨는 “여건상 애완동물을 키우기가 힘들어 반려돌(애완돌)이라도 사야겠다고 마음 먹고 라바를 입양하게 됐어요. 라바는 제 애완돌에게 지어준 이름이에요. 종종 직장에서 힘든 일을 내 돌에 털어놓곤 하는데 물론 무생물인 돌이 내 말을 이해할 순 없겠지만 제 말에 귀 기울여주고 말 못할 고민 등 비밀을 들어주는 친구 같아요. 마치 반려견에게 말하는 것처럼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가족이죠. 동글동글하고 무게감이 있어 손에 쥐었을 때 그립감도 좋고 앙증 맞아요, 안정감도 느껴지고요, 주말엔 같이 산책도 하고 목욕도 시켜주고 반려동물처럼 밥을 주거나 배변 처리를 할 필요도 없고 우리 라바는 힘든 사회생활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아 주는 그런 존재예요.”

다양한 모양이 새겨진 아크릴 키링.
다양한 모양이 새겨진 아크릴 키링.

◆ 순수했던 그 시절이 건네는 위로=힘이 부치는 요즘 시대에 옛 시절을 회상하며 향수를 통해 위로받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다양한 캐릭터 그려진 키링 보니 옛날 생각 나네.”

잡화점을 운영하는 김한정(40·여) 씨는 이렇게 말했다. 간혹 손님들이 아이와 함께 와서 하는 말, ‘나도 옛날에 많이 가지고 다녔는데, 옛날 생각나네! 그립다.’ 어린 시절 듣던 노래, 그 당시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발견하게 되면 묘한 향기를 맡으며 그날의 나로 돌아가게 되는 경험을 누구나 하게 된다. 어쩌면 그 순간이 내 어린 시절의 분위기와 닮은 것 같다는 기분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아닐까.

이처럼 사람들은 유해함을 멀리하며 무해력에 열광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내일이 불안한 시대에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는 삶의 방식인 또 하나의 트렌드 키워드가 ‘아보하’다. 아보하는 아주 보통의 하루를 줄여 쓴 말이다. 너무 행복하지도 너무 불행하지도 않은 일상을 추구하는 사람들, 젊은 청년이든 중년이든 나이를 불문하고 행복해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무탈한 하루를 보내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꼭 삶이 힘들어서만은 아니다. 녹록지 않은 현실인데 우리가 항상 들여다보고 있는 스마트폰 너머에는 높은 물가에도 해외여행을 다니는 사람들, 호화롭게 밥을 먹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내 인생은? 내 하루는? 비루하기 짝이 없다. 계속해서 다른 사람과 비교해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으로 만든다. 이러한 시점에서 등장한 아보하는 자신만의 일상을 살아가는 것에 중점을 두고 하루를 경쟁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오늘 하루를 무탈하게 살아내면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내가 사는 하루하루가 늘 특별할 순 없다. 특별함을 억지로 쥐어 짜내는 삶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아보하’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아닐까.

김동은 기자 yarijjang@ggilbo.com
 

[인터뷰] 아주 보통의 하루, 평범한 일상도 소중한 시간

실제 아이 얼굴로 만든 캐리커처키.
실제 아이 얼굴로 만든 캐리커처키.

◆ 일상생활에서 기적같은 하루
“아주 더도 말도 덜도 말고 오늘도 ‘아보하’ 해요.”
직장에서의 아보하 실천은 최고의 무대가 된다. 직장인 최정훈(32) 씨는 현관문을 제작하는 회사를 다니다 작업 도중 손을 크게 다쳐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뒀다. 지금은 새로운 일을 시작한 최 씨는 “새로이 계획한 것도 없고 더 바라는 것도 없어요.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다쳤던 경험으로 일하는 동안 다치거나 아프지 않고 내일도 무사히 출근만 하길, 특별함 없이 그냥 딱 오늘만 같으면 좋겠어요.”

간호사로 교대 근무 하고 있는 김성욱(40) 씨는 “교대 근무 특성상 평일에 쉬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 마다 특별한 일이 없을까 매일 고민했어요. 남들 일할 때 혼자 쉬다 보니 사람들 만날 때 시간 맞추기도 힘들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많았어요. 그래서 혼자 누워있거나 일상이 매일 지겹게만 느껴 졌지만, 지금은 오히려 제가 쉬는 날이 사람들도 부쩍 거리지 않고 특별함 없이 혼자 영화 보고 싶을 때 바로 볼 수 있고 바람 쐬러 가고 싶을 때 가고, 이런 평범한 생활이 오히려 행복인 것 같아요.”

보통의 하루를 바라는 건 육아맘들도 간절한 바람일 것이다. 김태리(30·여) 씨는 아이 둘을 키우는 평범한 육아 맘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무사히 잠드는 것이 육아맘들이 바라는 하루. 김 씨는 “얼마 전 새벽에 고열로 많이 아팠던 아이로 인해 가족 전체가 고생을 많이 했어요. 아이들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어도 되니 규칙적인 시간대에 안정적인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어요.”

또 다른 육아맘 김안나(39·여) 씨는 아이들에게 화내지 않고 등원시킨 후 제시간에 맞춰 출근하기 위해 루틴을 만들었다. 인스타그램 끊기, ‘참을 인 세 개 먹기’와 온화한 마음·평정심 갖기다. 이 모든 걸 갖춰야 아이들과 보통의 하루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얘들아, 제발 아침에 딴짓 하지 말고 등원준비 좀 잘하자.”

어쩌면 우리에게 일상처럼 주어진 오늘 하루가 특별함일 수도 있다. 행복을 경쟁하듯 애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하루를 사는 것이 행복 아닐까. 오늘도 그저 ‘아보하’ 보내요.

김동은 기자 yarijjang@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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