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 다크 투어리즘 보고서Ⅳ]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가 외면했던 진실, 침묵당한 이야기들이 그 안에 있다. 충남 곳곳에 새겨진 100년의 상처를 따라가는 여정. 이 기록은 단순한 관광이 아닌, 우리가 마주해야 할 역사의 현장들이다. 천안 아우내장터에서 시작해 논산시민공원까지, 잊힌 이야기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이 여정에서 만나게 될 것은 독립운동가의 절규, 강제징용된 청년들의 한숨, 그리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침묵이다. 과거는 지나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 연장선상에 있다. 100년 전 이 땅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오늘날 우리가 고민하는 인권·평화·정의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그래서 이 여정은 단순한 다크투어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질문이다.

◐ 천안 아우내장터
1919년 4월 1일 만세운동의 격전지
태극기 든 주민들 일제 총칼에 맞서

◐ 유관순 열사 기념관
당시 열사가 사용했던 유품들 전시
옥중투쟁 뜨거운 애국혼 등 오롯이

◐ 공주 우금치 전적지
동학농민군 ‘민중의 꿈’ 담긴 장소
험한산세 활용 결사항전 끝에 순절

◐ 강경근대거리
신사참배 거부했던 강경성결교회
일제수탈 모진 고통의 흔적 그대로

◐ 논산 평화의 소녀상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위안부 문제
침묵의 공간, 역사적 진실 직시해야

▲ 유관순열사기념관에 선 유관순열사상

◆아우내장터, 유관순의 기억
이른 새벽 대전을 출발해 천안 아우내장터에 도착했다. 1919년 4월 1일 이곳은 독립만세운동의 격전지였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1300여 명의 주민들이 장터에 모였다. 일제는 기관총으로 대응했다. 19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당했다. 시신들은 장터 건너편 언덕에 가매장됐다가 이후 천안 병천면 용두리 공동묘지로 이장됐다. 장터 인근에는 아우내 3·1운동 독립사적지가 있다. 기미독립운동기념비와 함께 . 기념비에는 1919년 3월 1일부터 4월 1일까지의 기록이 시간 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문헌에 따르면 당시 일본 경찰은 왜곡된 기록을 그대로 남겼다. ‘폭도들이 돌진해 와 부득이 발포했다’는 것이다. 생존자들의 증언은 달랐다. ‘손에는 태극기만 들고 있었다. 총을 쏘기 시작했을 때도 도망가지 않고 만세를 불렀다.’ 기념비는 이를 고스란히 증명하는 증거다.

유관순열사기념관
유관순열사기념관

이번엔 유관순 열사 기념관을 찾았다. 3·1운동 당시 유관순 열사의 나이 16세. 이화학당 재학 중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퇴학당한 후 고향 병천으로 돌아와 아우내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기념관에는 당시 열사가 사용했던 유품들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그중 교과서, 연필, 그리고 옥중에서 쓴 편지가 눈에 띈다. 특히 서대문형무소 수감 기록이 눈길을 끈다. 1920년 재판 기록에는 ‘피고 유관순, 징역 3년’이라는 판결문과 함께 그의 진술이 남아있다. ‘나라를 위해 한 일인데 무슨 죄가 되느냐’는 당당한 항변은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고문으로 인한 상처 진단서도 보존돼 있다. 갈비뼈 골절, 전신 타박상. 기록은 차갑게 계속된다.

◆농민들의 함성이 멈춘 자리
이제 천안을 떠나 공주로 향한다. 산자락을 타고 오르는 길은 130년 전 동학농민군이 걸었던 그 길이다. 이름하여 우금치(牛禁峙). 소도 못 넘는다는 이름처럼 가파른 이 고개는 동학농민운동의 마지막 격전지였다. 고개를 오르는 동안 발걸음은 무거워진다. 1894년 음력 11월 이곳에서 농민군 1만여 명이 관군과 일본군을 상대로 싸웠다. 전투는 3일간 이어졌다. 농민군은 돌을 굴리고 죽창을 들었지만 신식 무기를 앞세운 일본군을 막아내지 못했다.

우금치전적지에 마련된 동학혁명군위령탑
우금치전적지에 마련된 동학혁명군위령탑

 

이후 동학농민운동은 사실상 막을 내렸고 조선은 급격히 일제 침략의 길로 접어들었다. 우금치 정상에 서면 아래로 넓은 들판이 보인다. 131년 전 그날 농민군은 이곳에서 무엇을 봤을까. ‘사람이 하늘이다(人乃天)’를 외치며 평등한 세상을 꿈꿨던 이들의 절규는 아직도 이 고개를 맴도는 듯하다. 전적비 앞에는 누군가 놓고 간 들꽃 한 송이가 놓여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했던가. 교과서는 이곳을 ‘진압’이라는 한 줄로 정리했다. 하지만 우금치는 말한다. 이곳은 단순한 진압의 현장이 아니라 평등을 향한 민중의 꿈이 잠든 곳이라고. 지금도 이 고개에 서면 당시 농민군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고.

오늘 점심은 공주 한정식이다. 밥상 위 소박한 반찬들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 땅의 농민들이 꿈꾸었던 세상은 과연 이뤄졌을까. 오늘날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차별을 생각하면 우금치의 질문은 13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사람이 하늘이다.’ 이 단순한 외침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모든 사람이 하늘처럼 존엄한 세상에 살고 있는가.

◆시간이 멈춘 강경근대거리에서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늦은 오후, 충청도 제일의 상업도시였던 강경읍으로 향했다. 첫발을 내딛는 순간,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했다. 낡은 건물들 사이로 스며드는 석양빛은 과거의 이야기를 속삭이며, 나를 이끌었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니, 1923년의 흔적을 품은 강경성결교회가 눈에 들어왔다.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이들의 용기가 첨탑 끝에서 하늘을 향해 울리는 듯했다.

강경근대거리 강경성결교회 옆에 있는 최초신사참배거부신도기념비.
강경근대거리 강경성결교회 옆에 있는 최초신사참배거부신도기념비.

거리를 따라 이어진 옛 연수당 건재약방은 일제강점기 한약재 거래의 중심지였다. 그곳의 목조 한옥과 일본식 차양은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은 1905년 한호농공은행으로 시작해 현재는 강경역사관으로 새 생명을 얻었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과거의 숨결은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을 준다.

강경근대거리에 있는 강경구락부
강경근대거리에 있는 강경구락부

강경구락부와 강경호텔은 이곳의 문화와 역사를 더욱 풍부하게 한다. 강경구락부는 과거의 낭만을 품고 있으며, 카페와 음식점이 함께 운영되어 현대적인 감각과 레트로한 분위기가 조화를 이룬다. 강경호텔은 드라마 세트장 같은 고풍스러운 외관을 자랑하며, 이곳의 매력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이제 붉은 노을이 물들어가는 거리를 걸으며, 단순한 취재가 아닌 우리의 뿌리를 마주하는 시간이 된다. 강경의 거리는 오늘도 잊힌 이야기들을 속삭이고 있다. 그 속에서 나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순간을 느끼며, 이곳의 역사와 문화에 깊이 빠져든다.

◆침묵의 무게가 전하는 역사의 진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논산시민공원을 스치고 지나간다. 충남 다크투어의 마지막 발걸음, 평화의 소녀상 앞에 서면 시간이 멈춘 듯하다. 군사도시 논산의 중심에서 마주한 이 침묵의 공간은 우리가 직시해야 할 역사의 현장이다. 이곳에서 울리는 “나는 아이도 없고, 돈도 없다. 목숨만 남았다”는 송신도 할머니의 떨리는 목소리. 1922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그녀는 16살의 어린 나이에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달콤한 거짓말에 속아 중국 우창의 위안소로 끌려갔다. 초경도 시작하기 전 그의 순수한 꿈은 전쟁이라는 폭력 앞에서 무참히 짓밟혔다.

논산시민공원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논산시민공원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그 아픔을 기억하듯 소녀상 앞에 서면 그날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하다. 굳게 다문 입술과 꼭 쥔 주먹이 말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전한다. 14세부터 18세, 꽃다운 나이에 강제로 끌려간 소녀들의 나이가 가슴을 친다. 소녀상 주변에는 이름 모를 방문객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편지들, 노란 나비들, 꽃다발이 무언의 증언을 이어간다. 그렇게 이어진 7년간의 지옥 같은 시간, 임신과 유산을 반복하며 살아남은 그 목숨으로 끝까지 진실을 외치겠다는 의지. 해방 후에도 일본에 홀로 남겨진 그녀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법정 투쟁을 이어갔다. 그녀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할머니의 마지막 당부 “이곳에서도, 모든 곳에서,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는 말씀이 가슴을 파고든다.

기억의 벽에는 방문객들의 마음이 켜켜이 쌓여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이란 문구는 단순한 희망사항이 아닌 우리 세대의 책무다. 역사는 단순한 기록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질문이어야 한다. 논산시민공원의 소녀상이 전하는 이 침묵의 무게를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마지막 증언자들의 목소리가 사라지기 전 우리는 그 기억의 마지막 전달자가 돼야 한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되기에 그렇다.

논산시민공원 평화의 소녀상 옆에 있는 송도순 할머니 세월의 흔적을 담은 벽.
논산시민공원 평화의 소녀상 옆에 있는 송도순 할머니 세월의 흔적을 담은 벽.

◆기억하는 자의 책임과 미래
충남의 다크투어 현장들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아우내장터의 함성, 우금치 전적지의 통곡, 강경포구의 한숨, 평화의 소녀상의 침묵. 이 모든 곳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이 아픔을 어떻게 기억할 것이냐고 말이다. 유관순 열사의 발자취를 따라 걸은 천안에서 시작된 여정. 공주 우금치에서는 동학농민군의 마지막 숨결을 마주했다.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군에 맞서 싸우다 스러져간 농민군의 절규가 아직도 산자락에 메아리친다. 일제의 수탈 현장이었던 강경근대거리를 지나 마지막 종착지인 평화의 소녀상까지 각 장소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우금치전적지 기념관에서 전시를 관람하는 시민들
우금치전적지 기념관에서 전시를 관람하는 시민들

우금치 전적지의 비석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특별했다. 사람답게 살고자 했던 민초들의 꿈이 산산이 부서진 곳. 이곳에서 시작된 역사의 아픔은 강경을 거쳐 평화의 소녀상까지 이어진다. 일제의 폭압은 더욱 조직적이고 잔인해졌고 위안부 문제는 그 정점을 보여준다. 여정이 저물어간다. 마지막 햇살이 평화의 소녀상을 비춘다. 살아있는 증언들, 그리고 방문객들의 메시지가 어둠 속에서 빛난다. 동학농민운동에서 시작된 민중의 저항, 3·1운동의 뜨거운 함성,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위안부 문제까지.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을 말이다.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역사를 잊을 때 비극이 되풀이될 뿐이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자 미래 세대에 대한 약속이다. 다크투어는 끝났지만 우리의 기억과 책임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글·사진=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