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씨 성(性) 고려초기부터 역사에 등장

각종 문헌과 여산송씨, 은진송씨대종회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송씨의 시작이 언제부터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다만 송씨(宋氏)성이 우리나라 역사에 등장하는 시대는 고려초기 부터라고 한다.
은진송씨 대종회 임원이 중국 당나라 수도인 서안(西安)을 다녀와서 그곳의 가이드로부터 들은 내용을 참고로 전하면 다음과 같다.
당나라가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정벌할 때 당나라 장수 소정방 휘하에 10명의 장수가 있었는데 그 중 한사람의 송씨(宋氏)가 있었고 그 장수는 당나라 수도 서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여산(礪山) 태생이었다. 중국의 여산이란 지역은 당나라 황후(헌종비) 양귀비가 목욕을 하며 즐겼다는 화청지(華淸池)란 온천이 있는 지역으로 온천수가 나오는 여산은 중국에서 신성시하는 유명한 산이다. 그 송씨(宋氏)가 백제를 정벌한 후 도호부사(都護府使:도호부의 으뜸 벼슬)란 직책으로 백제 땅에 살게 되었는데 한국 송씨(宋氏)의 근원이라고 하였다.
그 가이드는 중국에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장교로 복무하다 가이드로 직업을 바꾼 교포 3세라고 했다. 은진송씨 임원은 그 가이드에게 개별적으로 그 진위 여부를 확인해보니 그는 육군사관학교 시절 배웠다고 했다. 그는 아마도 중국 무관사(武官史)에 있는 야사가 아닌가 판단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와 우연히 일치하는 것이 우리나라 송씨(宋氏)는 백제말기부터이고 송씨(宋氏)의 발원지가 지금의 충청남도 공주시와 논산시 일원으로 기록에 나오고 있으며 그 연대도 추정하면 비슷하게 맞아 떨어진다고 한다.
문헌에는 우리나라 송씨는 호부상서(정3품장관)를 지낸 도시조 송주은(宋柱殷)의 7세손 송순공(宋舜恭)이 네 아들을 두었는데, 둘째 연안백 송흥룡(宋興龍)의 후손은 연안송씨가 되고, 셋째 진천백 송인용(宋仁龍)의 후손은 진천송씨, 넷째 홍주백 송복용(宋福龍)의 후손은 홍주송씨가 됐다. 송순공의 큰아들 송성룡(宋成龍)의 둘째 신평군 송정열(宋正烈)은 신평송씨가 되고, 송성룡의 큰아들 송흥렬(宋興烈)이 세 아들을 두었는데 큰아들 송자영은 도시조의 10세손으로 여산백이되고, 둘째 송맹영(宋孟英)은 야성군으로 야성송씨가 됐으며, 셋째 송계영(宋季英)은 김해군(金海君)으로 김해송씨가 됐다.
송주은의 7세손 송순공(宋舜恭)의 후손으로 판도판서(版圖判書:호부상서로 고치기 전의 판도사 정3품장관)를 지낸 송자영(宋自英:서산군(瑞山君)에 봉해짐)이 세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 송유익(宋惟翊:礪山君)은 여산송씨 시조, 둘째 송천익(宋天翊:은진군 恩津君)은 은진송씨, 셋째 송문익(宋文翊:전서(典書)를 지냄)은 서산송씨로 나뉘었다.
그 후 몇대를 지나 정당문학(政堂文學:고려시대 중서문하성의 종2품)을 지낸 송숙문(宋淑文)은 여산송씨의 1세조로 받들어지고 있으며, 송대원(宋大源)은 은진송씨의 1세조로, 송대경(宋大慶)은 서산송씨의 1세조로 받들어지고 있다. 이밖에도 많은 본관이 있으나 모두 위의 3파(派) 후손들이다. 송씨는 현신(賢臣)과 석학을 많이 배출하였는데 많은 수가 여산과 은진송씨에서 배출되었다고 하며 진천, 신평, 야성송씨도 그에 못지않다고 한다.
대부분 송씨는 도시조 송주은의 후손이며 전체인구의 1,4%로 2011년 현재 286성씨 중 19위에 해당한다. 송씨끼리는 이본(異本)이라도 통혼하지 않는 것이 관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