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삶이 곧 한 편의 영화…진심을 담고 싶죠”
초등학생 시절 우연히 캠코더 잡아
영상 본 친구들 반응에 전율 느껴
일상의 순간 특별한 이야기 담아내
대전독립영화제서 대상 거머쥐어
졸업작품으로 SF 장르 도전 나서
우리는 종종 청춘이란 단어가 가진 본연의 의미를 잊곤 한다. 그것은 단순한 나이대가 아니라 뜨거운 열정과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시간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전의 곳곳에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청년들이 있다. 그들은 ‘취직’이라는 익숙한 길 대신 자신만의 별자리를 그리며 새로운 우주를 만들고 있다. 때론 불안하고, 때론 외롭지만, 그들의 눈빛만은 반짝이는 별처럼 빛난다. 이들에게 직업은 단순한 생계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바꾸는 도구이자 자신의 존재 이유가 된다. 소통으로 마음을 잇고 협업으로 꿈을 키우며 대전의 청년들은 사회라는 캔버스 위에 자신만의 색채를 입히고 있다.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려 한다. 그들이 걸어가는 길 위에서 마주친 좌절과 희망을, 두려움과 용기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기적들을 써내려가는 아름다운 도전의 순간들이 누군가에겐 새로운 시작을 위한 영감이 되길 바라면서. 편집자

누군가의 꿈은 아름답다. 그것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도 그 꿈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 되기 때문이다. 목원대학교 연극영화영상학부를 졸업한 청년감독 김정수(26) 씨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미국에서 우연히 잡은 캠코더가 그의 운명을 바꿔놨다. 서대전역 골목길의 햇살을 카메라에 담으며, 대전독립영화제에서 상을 거머쥐며, 때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며 그의 청춘은 필름처럼 천천히 감기고 있다. SF 영화를 꿈꾸는 그의 눈빛에는 봉준호 감독을 닮은 야망도 있다.
◆카메라와의 운명적 만남
어린 소년의 손끝에서 시작된 작은 떨림이 한 청년의 운명을 바꿨다. 초등학교 5학년, 미국 여행지의 새하얀 아침. 김 씨는 형의 꿈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봤다. 서툰 손길로 잡은 캠코더는 그의 첫 사랑이 됐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창이 됐다. 낯선 거리, 스쳐 지나가는 행인들, 하늘을 스치는 구름까지. 김 씨의 카메라는 일상의 모든 순간을 특별한 이야기로 담아냈다.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영상 속에 녹아들 때면 그의 가슴속에서도 작은 행복이 피어났다.
“처음 친구들이 제 영상을 보고 웃을 때의 그 전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제 심장이 화면 속으로 들어가 함께 뛰는 것 같았거든요. 그때 알았죠. 영화는 단순한 영상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라는 것을요.”
물론 김 씨도 성적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열정은 꺾이지 않았다. 밤이면 촬영본을 들여다보며 꿈을 다듬었고 새벽이면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대전독립영화제에서 빛을 발했다. 청소년부문 대상과 관객상이라는 두 개의 날개를 달고 김 씨는 목원대의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얼마 전 그는 25학번 신입생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했단다.
“입학식 날 제 가슴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떨렸습니다. 다른 이들이 말로 전하는 동안 저는 영상으로 제 진심을 담았죠. 교수님들과 후배들의 따뜻한 미소를 보며 깨달았습니다. 이제껏 제가 걸어온 길이, 앞으로 걸어갈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요. 그날의 설렘과 확신이 지금도 제 발걸음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대전의 골목길, 영감의 원천
서대전역 주변의 좁은 골목길은 그의 영화적 상상력을 키워준 특별한 교실이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골목 사이로 그의 카메라는 천천히 걸어갔다. 녹슨 철문 위로 떨어지는 석양, 오래된 간판을 스치는 바람 소리, 그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김 씨의 필름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처음엔 그저 예쁜 장면을 찾아다녔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골목길이 들려주는 진짜 이야기를 알게 됐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벽돌 하나에도, 그 틈새를 비집고 자라난 잡초 한 포기에도 우리네 삶이 녹아있더라고요. 그 순간 제 카메라는 단순한 기계가 아닌 마음의 눈이 됐습니다.”
이런 시선으로 탄생한 단편영화 ‘마스크’는 예천국제스마트폰영화제에서 그의 진가를 여과없이 드러냈다. 오래된 건물들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처럼 김 씨의 작품은 따뜻한 온기를 전했다. 100편이 넘는 작품을 만들며 김 씨는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나섰다. 우주로 시선을 더 넓힌 것이다. SF 장르에 도전하고 나선 것인데 졸업작품 ‘골디락스존 프로젝트’는 그 도전의 첫 발걸음이다.
“우주라는 무한한 캔버스 위에 인간의 모순된 아름다움을 그리고 싶었어요. 이기적이면서도 연약하고 때론 희망으로 가득 찬 우리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현대인들이 잃어가는 소중한 가치, 그 속에 숨겨진 작은 기적들을 영화로 전하고 싶었죠. 우리가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하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영화와 사람, 그리고 소통
카메라 렌즈 너머로 그가 발견한 것은 단순한 영상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었다. 촬영장은 김 씨에게 삶의 축소판이었다. 서로 다른 꿈과 색채를 가진 이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그는 영화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각자의 개성이 만나 하나의 이야기로 녹아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건 마치 마법 같죠. 때론 의견 충돌도 있고 힘든 순간도 있지만 그 모든 과정이 결국 우리의 이야기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전 매 촬영이 설렙니다. 새로운 만남이 빚어낼 특별한 순간들을 기대하면서요.”
대학 생활 내내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김 씨의 꿈은 멈추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구상한 시나리오, 교내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며 틈틈이 편집한 영상들. 그의 청춘은 그렇게 필름처럼 천천히 감기고 있다.
“카메라를 들면 모든 게 달라져요. 피곤함도, 현실의 무게도 잊히죠. 제 영화로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파문이라도 일으킬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게 제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니까요.”

대학을 졸업한 김 씨의 시선은 부산의 푸른 바다를 향한다. 영화 아카데미에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그의 눈빛에는 봉준호를 닮은 야망이 깃들어 있다. 한국의 일상 속에 숨겨진 특별한 진실들을, 그만의 언어로 세계에 전하고 싶다는 꿈 말이다.
“디지털 시대일수록 더 필요한 건 진심입니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서로를 이해하는 따뜻함, 그런 가치들을 전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김 씨의 카메라는 오늘도 세상을 향해 있다. 독립영화의 순수한 열정과 상업영화의 현실적 도전 사이에서 그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김 씨가 들려줄 다음 이야기가 우리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지 기대되는 이유다.
글·사진=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