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용 고체산화물 연료전지 만들어
도시가스로 고효율 전기·열 동시 공급
폐열 회수까지 90% 넘는 효율성 자랑
도시가스 활용 고순도 수소 생산 가능

“기술이란, 인간의 삶을 바꾸는 것
다음 세대가 이어갈 가치 있어야”

바야흐로 물 한 방울조차 치열한 경쟁 끝에 흘러가는 시대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말이 익숙한 까닭이기도 하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가 진짜 강한 시대, 그 중심엔 중소기업이 있다. 자금, 기술, 신뢰 중 무엇 하나라도 남다른 무기를 가진 기업들만이 오늘을 넘어 내일을 꿈꾼다. 대전시가 선정한 유망 중소기업들 역시 위기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스스로 성장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곧 일류경제도시 대전의 든든한 밑거름이다. 금강일보가 직접 만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생존의 법칙을 품은 사람들, 그 치열하고도 따뜻한 성장의 기록 속으로 들어가 본다.

기술은 언젠가 삶을 바꾼다. 하지만 어떤 기술은 언젠가를 기다리지 않고 오늘에 도착한다. 에이치앤파워㈜는 수소와 연료전지를 이야기할 때 미래보다 현재를 먼저 꺼내는 회사다. 기술은 전기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기술이 만들어낸 전기는 눈앞에서 불을 밝히고 기계를 움직인다. 연구실의 논문이 아니라 건물 안에서 돌아가는 연료전지의 기여는 그렇게 시작된다. 강인용 대표이사는 기술의 본질을 기여라 말한다. 기술이 세상과 연결되고 사람 손에 쥐어질 때 비로소 의미가 된다는 믿음에서다. 에이치앤파워는 바로 그 지점에서 기술을 만들고, 조직을 키우고, 다음 세대를 위해 조용히 무언가를 건네고 있다.

◆현장에서 완성되는 기술
수소와 연료전지는 대체로 미래 기술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는 그 기술이 오늘의 현장에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더 주목한다. 기술이 남보다 빨라도, 남다르게 정교해도 현실에 닿지 못하면 무용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에이치앤파워의 연료전지는 앞선 기술이 아니라 현장 기술로 성장했다.

“기술이라는 건 결국 누군가의 삶에 닿을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사람들 삶에서 느껴지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게 저희 기술의 방향이고 존재 이유입니다.”

에이치앤파워는 연구실에서 바로 시장으로 뛰어든 회사다. 2009년 KAIST 기술교원창업 제도를 통해 설립됐고 연구자가 직접 기술을 사업화한 전형적 기술 스핀오프 기업이다. 한국전력공사와 협업해 건물용 연료전지를 개발했고 2021년부터 상용 보급을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200㎾ 이상이 설치됐다. 모든 과정은 기술이 맞닿은 현실을 중심에 둔 결과였다.

“기술 하나가 어떤 세상과 연결돼야 하는지를 우리는 언제나 고민합니다. 기술이 사람들 일상과 떨어진 채 존재한다면 그건 혁신이 아니라 고립이죠. 그래서 처음부터 기술이 닿을 곳을 상상하면서 움직였습니다.”

◆“수소, 분산 전원의 열쇠”
에너지 시장은 지금 전환점에 서 있다. 과거엔 모든 에너지가 중앙에서 만들어져 지역으로 전달됐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전기를 만드는 발전과 사용하는 수요가 물리적으로 가까워지고 있다. 이른바 분산형 전원 시대다. 에이치앤파워는 이 흐름의 가장 앞자리에 있다.

“우리는 중앙이 모든 걸 통제하던 구조에서 벗어나야 해요. 기술이 허락한다면 거기서 직접 만들고 쓰면 되는 거죠. 수소는 그런 전환을 가능하게 해주는 키(Key)라고 봅니다.”

에이치앤파워의 핵심 제품은 고체산화물 연료전지(SOFC)다. 3㎾, 10㎾ 단위로 건물 안에 설치되고 도시가스를 통해 고효율로 전기를 만든다. 설치만 되면 전기와 열을 동시에 공급하며 폐열까지 회수해 종합 효율은 90%를 넘는다. 이제는 도심형 수소 생산기도 개발해 도시가스를 활용해 고순도 수소를 뽑아내는 기술까지 확보했다. 이 기술은 수소 충전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기술이 어디서부터 시작돼 어디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는 게 중요합니다. 연료전지는 수소로 전기를 만들기도 하지만 거꾸로 전기로 수소를 만들 수도 있어요. 그런 기술은 에너지를 움직이는 방식 자체를 바꾸죠. 그 전환에 저희 기술이 쓰인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지 않을까요?”

◆창업, 실험실 밖으로…
그는 에이치앤파워 창업을 ‘자연스러운 선택’이라고 표현한다. 박사과정 동안 지도교수와 함께 연구하던 기술을 상업화하고자 창업했고 창업 초기는 행운처럼 흘러갔다. KAIST의 연구 인프라와 기술 이관 덕분에 초기부터 완성도 있는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고 문제 해결이 필요할 땐 학교와의 협업으로 풀어냈다.

“연구를 하다 보면 ‘이 기술이 정말로 사회에 쓰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늘 있었어요. 단지 논문 하나, 특허 하나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에 스며들 수 있는 기술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연구실 안에서 끝나지 않겠다는 마음, 어쩌면 거기서부터 저희의 길이 정해졌는지도 몰라요.”

강 대표이사는 기술을 만든 연구자들과 함께 기업을 꾸렸고 이들은 단순한 조직원이 아니라 각자의 영역에서 깊이 있는 문제 해결자로 성장했다. 에이치앤파워는 처음부터 ‘기술은 팀으로 쌓인다’는 원칙 아래 움직였다. 그것은 조직 내부에 ‘기술은 함께 만든다’는 문화로 자리잡았다.

“혼자 만드는 기술은 오래가지 않아요. 사람들과의 교류, 현장에서의 피드백, 그리고 다양한 시행착오가 기술을 완성시켜줍니다. 제가 이 길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도 함께 시도해볼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기 때문이죠.”

◆자율이 키우는 기술조직
기술기업은 보통 성장이 조직 문제를 낳는다. 에이치앤파워도 마찬가지였다. 창업 초반엔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소수의 연구자로 충분했다. 하지만 조직이 커지면서 각자의 역할은 세분화되고 팀워크보다 시스템이 필요해졌다. 그는 이 시기를 도전의 연속이라고 했다.

“기술개발은 오히려 쉬웠습니다. 그러나 조직이 커지면서는 그때와 같은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걸 느꼈어요. 각자 자율적으로 일하면서도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했고 그걸 만들기 위해 경영 방식부터 완전히 새로 바꿨습니다.”

강 대표이사는 특히 기여를 조직 철학의 중심에 두고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목표와 활동을 자발적으로 설정, 협업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가치선언을 도입했다. 업무는 본부 중심의 세분화된 분장을 통해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조직 전환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평균 연령이 30대 초반인 조직인데 이들이 자율성과 책임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은 대전 안에서도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기술은 이런 문화 안에서 자랍니다.”

◆“기술은 연결이다”
그는 기술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이 단지 시장 지배력이나 숫자 중심의 성과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연료전지가 도시 안에서 전기를 만들고 수소가 새로운 에너지 주체로 작동하는 중앙집중형에서 분산형으로 바뀌는 흐름의 일부가 돼야 한다고 했다.

“기술이라는 건 결국 다음 세대가 이어갈 수 있어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에게 건네질 수 있는 기술,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 그런 기술을 만드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에이치앤파워는 현재 기술특례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예비심사 단계 진입이 목표다. 다만 강 대표이사는 상장이라는 과정보다 기술이 더 오래 지속되고 다양한 현장에 쓰이도록 만드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고 강조했다.

“기술은 조용하게, 그러나 깊게 세상을 바꿉니다. 우리는 그 가능성의 한 조각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술을 만들고 있습니다.”

글·사진=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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