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형 증기기관차 129호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말소
사실 여부 검증 주장 잇따랐으나
국가유산청 17년만에 오류 잡아
임재근 ㈔평화통일교육연구소장
“그간 관련기관 대응 아쉬워” 지적

▲ 미카형 증기기관차 129호. 국가유산청 제공

6·25 한국전쟁 중 딘 소장 구출 작전에 투입된 기관차로 알려졌던 미카형 증기기관차 129호가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위를 잃었다. 국가유산청은 12일 관보를 통해 129호의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을 말소한다고 고시했다. 등록 17년 만의 결정이다.

129호는 2008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며 김재현 기관사와 미군 결사대가 북한군에 포위된 딘 소장을 구출하기 위해 탑승했던 기관차로 소개돼 왔다. 이후 현충원 야외 철도기념관 전시물, 교육 콘텐츠, 각종 보훈홍보물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그러나 사료와 생존자 증언, 미군 전사 기록이 축적되면서 해당 내용에 대한 의문은 꾸준히 이어졌다.

국가유산청의 129호 국가등록문화유산 말소 조치는 실제 작전에 투입된 기관차가 129호가 아닌 미카 219호였다는 사실이 결정적이었다. 1953년 교통부 발간 ‘한국교통동란기’와 ‘철도청 백년사’, ‘미 육군 공식 전사 - South to the Naktong, North to the Yalu’를 비롯해 다수 문헌과 증언에서 김재현 기관사가 탑승한 열차는 7월 20일 화물 후송 작전에 투입된 219호로 기록돼 있다. 그럼에도 129호가 구출 작전 기관차로 등록, 기념돼 온 배경에는 명백한 사료 검증 부족이 있었던 셈이다.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과정에서의 사실관계 검증과 심의 절차가 더 강화돼야 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같은 오류를 지적한 인물은 임재근 ㈔평화통일교육연구소장이다. 임 소장은 2021년 ‘딘 소장 구출 작전에 대한 재검토’라는 제하의 논문을 발표해 김재현 기관사가 운전한 열차가 129호가 아님을 구체적 사료로 제시했다. 그럼에도 이후 한국철도공사 등 유관 기관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국가유산청이 최근에야 내부 검토를 거쳐 말소를 결정했다. 임 소장은 “새로운 사실을 근거로 공공 기억을 수정한 것은 용기 있는 결정이지만 그간 관련 기관들의 대응은 지나치게 느렸고 책임 회피성 태도는 아쉬웠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이번 등록 말소는 129호가 지닌 전시물로서의 활용 가치를 배제하는 조치는 아니다. 129호는 한국전쟁기 대전철도국 소속으로 주요 간선에서 운행됐고 이후 국립대전현충원 야외 철도기념관에 전시돼 철도 작전의 환경과 철도인의 역할을 상징하는 자료로 활용돼 왔기에 그렇다. 김재현 기관사도 탄약 후송 임무 중 전사한 것은 변치 않는다. 특히 이 작전은 군수 수송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전쟁기 철도 운영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 있다. 김재현 기관사의 희생과 작전의 의미가 결코 축소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임 소장은 “129호는 실제 작전 기관차가 아니라는 점이 명확하지만 그 자체로 전시물로서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김재현 기관사의 작전은 구출이 아닌 탄약 후송이었지만 철도인으로서 감당한 희생은 결코 덜하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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