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광복 80주년 기념 특별전

‘박물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낮은 조도 밀폐된 공간의 유리 진열장, 식별은 가능하지만 그리 밝지 않은 조명 아래 근엄하게 놓인 유물 그리고 깨알 같은 글자로 채워진 설명 패널로 구성된다. 중고 시절 단체 견학으로 들렀던 박물관의 모습은 그 이후 오랜 세월 고착된 형상으로 남아 있었다. 이런 고정관념은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어두운 분위기가 밝아졌고 고정되어 화석 같은 느낌을 주던 소장품에 생동감이 더해지는듯 크고 작은 기획전시와 참여 프로그램으로 종전 엄숙한 분위기의 공간에 밝은 활기가 더해 진 것은 큰 변화였다.

2017년과 2018년 열렸던 ‘프랑스 근현대 복식, 단추로 풀다’전과 ‘예르미타시 박물관전–겨울 궁전에서 온 프랑스 미술’전은 흥미로운 발상과 충실한 전시 내용 그리고 기획 의도에 담긴 전향적인 메시지 등으로 오래 기억에 남는다. 국립박물관이라는 명칭이 주는 관료적인 고정관념을 벗어나 시, 공간을 넘어 보편적인 일상 감성과 관람자를 ‘오래된 미래’로 이끌어 가는 여러 기획전시 등은 인상적이었다.

단추라는 작은 물체에 담긴 함의, 단추를 통하여 투영되는 그 시대의 관념과 사회의식을 중심으로 보편적 인간존재와 삶의 양식을 이해하려는 의도는 박물관이 제공할 수 있는 미덕의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예르미타시 박물관전’은 17세기 이후 러시아와 프랑스 두 나라 문화 교섭사를 조망하며 글로벌 시대 국가간 문화 수용과 접변의 사례 분석 연구로 의미 있는 전시였다. 필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펴내는 월간 ‘박물관신문’에 이 두 전시 리뷰를 쓰면서 문화의 생산-유통-소비채널의 중요한 요소로 박물관의 역할과 미덕을 강조하였다.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콘텐츠 개발과 마케팅 그리고 한류 열기에 힘입은 K- 컬쳐에 대한 관심 등으로 2023년 국립중앙박물관에 418만명이 방문했다고 한다. 루브르, 바티칸, 대영박물관, 뉴욕 메트로폴리턴 뮤지엄 그리고 런던 테이트 모던에 이어 세계 6위에 링크된 것이다. 2024년에는 세계 8위였고 특히 올해는 상반기에만 270만명이 찾아 지난해 대비 64% 증가하였다. 이 추세라면 올 연말까지 600만명에 이르러 관람객 수에서 세계 3대 박물관에 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국인 관람객 점유율이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겠지만 프랑스 2곳, 영국 2곳, 미국 2곳 그리고 바티칸, 스페인, 러시아 등 세계적인 관광지에 자리 잡은 다른 박물관이 누리는 지리적, 지정학적 이점에 비하여 대한민국 박물관이 최상위권에 속해있다는 사실은 21세기 세계 문화사에 기록될 만하다. 그리고 박물관 기념품인 뮷즈 (뮤지엄 + 상품을 의미하는 ‘굿즈’의 합성어) 매출 역시 이 기간 중 지난해 대비 34%가 늘어 115억을 기록했다. 박물관이 이제 유물 관람이라는 단방향적 구조의 문화 공간 기능에서 벗어나 잠들어있는 감성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일깨우면서 팍팍한 일상을 부드럽고 윤택하게 이끄는 촉매와 향도가 되어 주기 바란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우리 문화유산을 집약하여 보여주는 공간이라면 그 관심과 열기에서 비껴날 수 있는 각 지역 국, 공, 사립박물관이 행여 소외되지 않기를 바란다. 문화의 중앙집중, 부익부빈익빈의 와중에서 지역 문화유산을 온전히 지키고 특화, 현양하는 중소규모 지역박물관에도 합당한 지원과 관심으로 박물관 강국, 균형 잡힌 박물관 문화를 꽃피웠으면 한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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