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 이스라엘 여군은 전체병력의 1/3, 전투병의 1/5을 구성한다.사진=연합뉴스

다닥다닥 붙은 책상과 걸상, 좁은 교실에 학생 80여 명. 겨울철에 난로라도 들여놓으면 더욱 좁아진다. 선생님들은 담임반 수많은 학생들 이름이며 성격, 가정환경 그리고 개인별 학업 성취도를 파악하기에 힘드셨을 것이다. 6,25 전쟁 이후 태어난 이른바 베이비 부머 세대는 한해 신생아가 100만을 훨씬 웃돌았지만 열악한 교육, 사회환경의 시대를 살았다. 매년 태어났던 이 100만여 명 그룹과 그 이전 세대들이 막강한 인력을 이루어 일터에서 군대에서, 해외에서 제각기 소임을 다하며 오늘의 우리나라를 이루었다고 하면 ‘국뽕’ 발언이 될까.

2024년도 신생아는 24만여 명이라고 한다. 2023년 대비 7천여 명 증가하였다고 반기는 분위기다. 이중 남녀 비율을 반반으로 보고 군복무 연령 까지 외국유학이나 이민을 제외하고 질환이나 병역면제 사유가 발생하지 않고 튼튼하게 성장하여 전원 현역입대 한다 해도 10여만 명에 불과하다. 지금처럼 군 복무 기간이 2년 미만일 경우 부사관이나 장교를 제외한 사병 편제정원 절반에도 못 미칠 듯싶다. 오랜 세월 익숙했던 ‘60만 대군’은 올해 7월 ‘45만 대군’이 되었고 특히 육군병사는 6년 사이 10만명 이상 감소하였다. 현대전이 첨단기술을 활용한 전투로 전환되어 예전처럼 총검을 앞세운 육탄전 비중이 현저히 줄었다 하더라도 병력의 절대부족은 나날이 심각해져 간다.

최근 육군사관학교 연구진이 ‘지속가능한 병역제도 시행을 위한 여성징병제 도입가능성 연구’라는 논문에서 여성징병제가 성평등 실현과 병력확보를 위한 지속가능한 대안으로 검토될 수 있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병역의무 부과를 거론한 것이 어제 오늘이 아니지만 관련 기관에서 체계적으로 심도 있게 나름 논리적 주장을 개진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이 연구에서는 여성징병제를 성공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북유럽 국가 사례를 언급하면서 그 나라에서 여성징병제 도입 이후 군복무 경험이 있는 남성 여성 모두가 높은 비율로 군경험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사실을 적시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여성 징병제를 시행하는 국가는 스무 나라 미만이라고 한다. 유럽 스칸디나비아 3국, 중동과 아프리카, 중남미 각기 몇 나라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미얀마와 북한 등이 포함된다. 이중 늘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는 북유럽 국가들은 한결같이 성평등 지수가 세계 최상위권이고 젠더 격차가 낮아 여성징병제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 없이 시행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젠더격차 지수가 146개 나라 가운데 94위에 머무는 등 성평등 관련 지표에서 낮은 순위를 보이고 있어 징병제 도입시 격렬한 갈등과 논란이 예상된다. 여성징병제 도입 전략으로 내세우는 사회경제적 인센티브 강화, 첨단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전투력 같은 측면의 타당성을 논의하기에 앞서 우선 국민의 뇌리에 깊게 각인된 여군 대상 성폭력과 전근대적 군사문화 잔존 같은 어두운 현실을 확실하게 뿌리 뽑는 법적 제도적 조치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휴전상태의 분단국가로서 여성 징병제는 결국 불가피한 현안으로 대두되겠지만 여러 전제, 선결조건의 해소와 광범위하고 심층적인 국민여론 수렴, 대승적 합의 도달을 포함한 사회환경 조성이 앞서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사회갈등과 혼란,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부작용은 명약관화하다. 그러므로 여성징병제만큼은 신속한 입법이나 단기간 내 가시적 성과 도출이라는 행정관행을 행여 답습하지 않았으면 한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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