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2월 7일, 500여 명이 수용된 대전 대화동 성지원에서 원생 20여 명이 폭행과 강제 노역을 견디다 못해 집단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삼청교육대와 함께 대표적인 인권유린으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던 때였다. 장막 속에 가려졌던 대전 성지원의 인권 유린 실태 일부가 세상 밖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은 진상조사위를 꾸려 현장에 의원들을 파견했지만 되레 원장과 호위대 격인 원생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정부 당국도 성지원 측을 옹호하는 자세를 보였고 진실은 다시 장막 속으로 숨어버렸다.
이후 지난 2024년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전국 4곳의 ‘성인 부랑인 수용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벌여 해당 시설에서 강제 수용과 인권 침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1987년 일부가 세상에 알려졌지만 진실 규명은 37년이 지나 이뤄진 것이다.
진실화해위는 해당 시설들에서 경찰·공무원 등에 의한 강제 수용, 본인 의사에 반하는 회전문 입소, 폭행 가혹행위, 독방 감금, 강제 노역 등 인권 침해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조사 결과 사회정화라는 명목으로 수시로 경찰·공무원 합동 단속반에 의한 불법적 단속 및 강제 수용을 지속했고, 민간 법인에 해당 시설들의 운영을 위탁하면서 인권 침해를 방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용시설에서 겪은 인권 유린은 말로 표현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처참했다. 당시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드러나기도 했지만 최근 끊이지 않는 피해자의 증언들을 보면 인간으로선 도저히 견디기 힘든 일들이 벌어졌다.
금강일보가 최근 한 피해 당사자의 증언을 채집한 것으로 보면 1984년 병무청 신체검사 통지서를 손에 쥐고 대전에 친구를 잠깐 보러왔다 강제로 수용된 대전 성지원에서의 생활은 생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입소한 첫날부터 기합과 발길질과 몽둥이가 날아왔다고 한다.
순화교육이란 명목으로 피티체조와 모래주머니를 메고 뛰었고 김밥말이와 날아라 비행기라는 일반인들에게 이름도 생소한 각종 기합이 이어졌다. 봉제공장과 철공소 등 강제노역장에서도 구타는 수시로 계속됐고 부실한 밥과 국등 음식은 물론 잠도 제대로 재우지 않는 등 인권 유린 그 자체였다.
진실화해위가 지난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국가에 공식 사과와 실질적 피해 회복 조치와 재발 방지책 마련을 권고했는데 얼마나 이뤄졌는지 궁금하다. 당시 진실화해위가 밝힌 피해 외에도 인권 유린 증언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 만큼 이들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조사와 추가 보상 등도 이뤄져야 한다. 물질적 보상이 응어리진 이들의 가슴까지 풀어줄 수는 없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