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금·폭행·강제 노역 인권유린
진실화해위 조사로 드러난 참상
정부와 지자체는 모르쇠로 일관
책임 통감하고 진상규명 나서야

<속보>=대전 성지원 인권침해 피해자들이 국가와 지자체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보호’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감금과 폭력의 실상을 증언하며 대전시의 진상 규명 노력과 공식 사과를 촉구하고 나서면서다. <본보 9월 23일자 3면 등 보도>

지역 사회에서도 성지원 인권유린 문제는 더 이상 과거사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피해자 증언과 시민사회의 문제 제기가 이어지면서 사건은 다시 공론의 장으로 올라왔다.

성지원에 대한 진상규명 시도는 1987년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 폭로된 직후 있었다. 당시 야당인 신민당이 전국 복지원 실태조사를 추진했고 성지원도 포함됐다. 그러나 현장을 찾은 신민당 의원들이 원장과 원생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하면서 조사는 무산됐고 진실은 다시 묻혔다.

37년이 흐른 지난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성지원과 충남 양지원 등 천성원 계열 시설에 대한 조사를 통해 은폐돼 온 인권침해를 공식 확인했다. 조사 결과 성지원은 1980년대 내무부 훈령 10호를 근거로 부랑인 수용을 명목으로 운영됐지만 실제로는 무차별적 연행과 감금, 폭행, 강제노역이 일상이었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 모 대학 의과대학에 해부용 시신 113구를 넘겼는데 같은 시기 의대가 인수한 주검 117구 가운데 97%가 성지원에서 제공한 것이었다. 연고자에게 사망 관련 이의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거나 시설끼리 수용자를 돌려막는 행태도 드러났다. 피해자 이영철(가명·67) 씨는 “도망은 꿈도 꾸지 못했다. 붙잡히면 일명 골인소대로 끌려가 망루에서 뛰어내리기, 원산폭격 같은 가혹행위를 겪었다. 밖에서 본 시설은 평화로워 보였지만 안은 지옥이었다”라고 증언했다.

▲ 사진=챗GPT 제작

그럼에도 정부 차원의 실질적 지원이나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진실·화해위가 피해자 조사 활동을 제도화하고 개별 구제 신청이 없어도 보상과 재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권고했지만 정부의 움직임은 없는 상태다. 시 역시 별도의 조사나 피해자 대책을 내놓지 않은 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최소한 지자체라도 나서야 한다고 요구하는 이유다.

이들은 진상조사위원회 설치와 피해자·유가족에 대한 공식 사과, 생활·의료 지원 대책을 시급한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피해자 정한영 씨는 “이미 잃어버린 청춘과 건강은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가 바라는 건 거창한 보상이 아니라 최소한의 진정성 있는 사과다. 시라도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역사적 과오를 바로잡아 달라”라고 호소했다.

이와 관련해 시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시 관계자는 “진실·화해위가 보건복지부에 권고한 상태라 이후 해당 부처가 지자체나 해당 법인에 필요한 조치를 내려야 진행할 수 있다. 성지원은 현재도 운영 중인 시설이고 관련 부서가 여럿 얽혀 있어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라고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시의 이 같은 태도는 피해가 대전에서 발생했고 생존 피해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결국 정부의 역할과는 별개로 지자체도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은 “1980년대 사건이라 현 지자체장에게 직접적인 행정적 책임은 없지만 역사적 책임은 분명히 통감해야 한다. 재발 방지를 다짐하고 피해자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공식적으로 표명하는 것이 최소한의 태도”라고 지적했다. 김재섭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도 “피해자들이 사과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지자체가 행정 절차를 이유로 책임을 피해선 안 된다. 정중히 사과하는 것이 마땅하고 이를 외면하는 건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라고 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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