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촌마을부터 장평보까지 : with 26번 버스

1. 갑천 걷기, 어느 구간을 좋아하시나요?

갑천은 대전의 남-북을 종단하는 대전 최대의 하천이다. 3대 하천 가운데 수량이 가장 풍부하고 유역면적(648.87㎢) 또한 압도적으로 크다. 전체 길이는 73.7㎞, 대전 구간은 약 40.6㎞다. 산책하고 운동하기 좋은 핫플로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가장 핫한 곳은 월평동~만년동(도룡동)~전민동 구간이다. 정비가 잘 돼있고 주·야간 뷰도 아름다워 인기가 많다. 국가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도솔대교~가수원교 갑천습지길도 매력적이다. 자연 그대로를 품은 이 구간은 대전의 허파 역할을 한다. 특히 갑천생태호수공원이 개장하면서 인접한 이곳에 대한 관심도 더 커졌다.

정림동/가수원동 구역도 많은 시민들이 이용한다. 이 구간을 벗어나면 평화롭고 한적한 상류지역의 멋을 품은 곳이다. 괴곡동~상보안~노루벌~장평보~흑석유원지 구간은 빼어난 풍광과 청정 바람을 자랑한다.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 사람들에게 갑천은 휴식과 위로를 준다. 상류 쪽으로 더 올라가보자. 흑석유원지 통과해 대추벌 지나 휘돌아흐르는 상류의 갑천누리길은 갑천 트레킹의 끝판왕 면모를 보여준다.

2. 26번 버스 평촌동종점, 증촌마을

여기서 갑천 트레킹을 시작한다. 26번 버스는 서남부터미널과 평촌동종점을 오간다. 여느 20번대 버스처럼 가수원을 지나 남하한다. 가수원시장 정류장에서 25분 남짓 달리면 평촌동종점에 이른다.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큼지막한 안내판을 만난다. ‘갑천누리길 증촌꽃마을’ 안내다. 마을 뒷산 봉우리 모양이 시루와 닮아 시루 증(甑) 자를 써서 시루마을, 증촌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때 주민들이 의기투합, 꽃축제를 열기도 해서 증촌꽃마을이 됐다.

이 마을의 시그니처는 멀리서도 보이는 커다란 느티나무다. 마을마다 보호수 한 그루씩 있지만 이곳 느티나무는 아우라가 범상찮다. 420년도 더 된 ‘대전 평촌동 느티나무 보호수’ 되시겠다. 주변 들녘과 어우러진 모습이 한눈에 반하게 만드는 아름다움을 뽐낸다.

느티나무를 뒤로하고 버스 타고 건너왔던 증촌교를 건넌다. 갑천길을 걷기 전에 조금 전 버스를 타고 지나왔던 골목길로 잠시 접어든다. 버스가 지나올 때  창밖으로 봤던 인상적인 풍경이 발목을 잡았다. 정겨운 이 골목길을 걷다보면 한 카페를 만난다.

오래된 교회 예배당을 리모델링한 곳이라고 한다. ‘제라’란 이름의 카페다. Je.R.A(Jesus Resurrected on Alive)는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뜻이다. 최근 제1회 대전 아름다운 정원 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곳이다.

3. 느티나무와 바위가 품은 정자, 용촌정

증촌마을에서 갑천 물길 따라 걷는다. 왼쪽은 갑천, 오른쪽은 조성중인 평촌산단이다. 산단 부지가 너무 가까이 붙었다. 여유폭을 두고 조성하면 좋을텐데 갑천누리길 바로 옆에 평촌산단이다. 10여 분 걷다보면 미리미다리가 나온다. 용촌동 지나 원정동으로 넘어가는 다리다. 이 다리 건너 용촌동에서 조금만 더 가면 폐역인 원정역이 나온다. 다리만 건넜다가 오기로 한다.

다리 건너면 정자와 느티나무, 바위가 어우러진 기묘한 곳이 기다리고 있다. 용마을? 용촌(龍村) 이름은 마을 어귀에 용머리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미리미마을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용의 순우리말인 ‘미르’에서 ‘미리미마을’이 됐다. 마을 초입 느티나무와 바위가 품고 있는 정자 용촌정에 올라보시라. 타임머신을 탄 듯 옛이야기가 들릴 듯한다. 해 질 녘 평화로운 들녘과 어우러진 기차 풍경을 보다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4. ‘100년 후에도 살고 싶은 농촌’

정뱅이마을. 정방마을이라고도 불린다. 백제 말기 당나라 장군 소정방(蘇定方)이 이곳에 진을 치고 싸웠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 이후 정방마을 혹은 정뱅이마을로 불렸다고 한다. (소정방 설은 근거가 모호하다) 용촌정에서 내려와 호남선 철로 아래를 통과하면 바로 나오는 이웃마을이다.

이 마을은 지난해 여름 큰 수해로 의도치 않게 많이 알려졌지만, 2008년부터 몇 해간 ‘100년 후에도 살고 싶은 농촌’을 목표로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던 곳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공공미술을 마을에 접목, 벽화와 조형물 등 예술활동을 통해 마을을 재단장했었다. 지금은 동네 구석의 벽화처럼 그 꿈이 희미해졌지만 지난해 수해를 겪은 뒤 ‘역경을 딛고 일어선 마을’의 새로운 모델이 되고 있다. 

5. 야실마을의 비보림과 선돌

정뱅이다리 건너서 정방마을을 나온다. 둑방길 아래 천변길을 걷는다. 이곳은 두계천이 갑천과 만나는 합수점이다. 신도안에서 시작된 두계천은 21㎞(하천길이는 16.55㎞)를 달려 갑천과 한 몸이 된다. 지난 2월 초록버스 여행 원정동 편에서 소개했듯 두계천길도 걷기 좋다. 호남선 열차와 함께 걷는 재미가 쏠쏠한데, 해 질 무렵엔 자전거탄풍경이 부르는 노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을 흥얼거리게 된다.

두계천과 갑천 합수지점 바로 위 다리가 봉곡2교다. 봉곡2교는 야실마을로 가는 입구다. 야실마을은 ‘불무실’이라 불렸었다. 한자로 야실(冶室)이다. 고려시대에 불뭇간(대장간의 방언)이 있어 유래된 이름이다. 예전에 잦은 홍수를 겪어서 불의 기운으로 물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붙인 이름이란 이야기도 있다.

마을길을 걷다보면 근사한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길을 만난다. 논과 논 사이에 만든 제방에 소나무들이 양옆으로 서 있다. 야실마을 비보림(裨補林)이다. 잦은 홍수가 힘들었던 마을사람들이 마을의 부족한 기운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소나무숲이다. 비보림은 ‘부족한 것을 채워서 돕는다’는 뜻이다. 그 옆엔 작은 선돌도 비스듬히 서 있다.

6. 오늘 트레킹의 하이라이트

사진 속 저 길을 걷고 있다. 갑천 물길 바로 옆이다. 수면이 고요하다. 흐르고 있다기보다 머문 물길처럼 보인다. 자전거 타고 지나가다가도 멈추게 되는 곳이다. 서성이는 발걸음, 수면 위 데칼코마니에 마음이 동한다. 자연은 흉내낼 수 없는 예술작품이라고 그랬던가. 독보적이다.

이곳은 반딧불이를 10월초까지도 볼 수 있는 곳이다. 고백건대, 애초 이번 EP.15 가제목은 ‘스마트폰으로 반딧불이를 찍으러 갔다’였다. 찍을 수 있을까. 9월 중순쯤 이곳을 먼저 찾았다. 늦은 저녁까지 머물면서 기다린 날이었다.

드디어 어둠에 완전히 잠긴 밤,  구름이 많아서 별도 헤지 못한 밤. 내 눈엔 잘 보이지 않는 반딧불이. ‘여기가 아닌가벼.’ 조금씩조금씩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그때, 예고없이 눈앞으로 날아가는 반딧불이 한 마리. 그러더니 또 한 마리가 물 위로 휘리릭 사라졌다. 그리고 또 한 마리, 기회가 왔다. 한 마리가 바닥 풀숲에 앉았다. 천천히 다가간다.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다. 켜졌다꺼졌다 반복하는 불빛. 그러나 작은 점이 되어 날아가는 빛. 이때쯤이었나, 폰사진으로 담는 건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이게 최선이었다.
이게 최선이었다.

그때부터 ‘환상 속의 그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반딧불이도 없는데 보인 것처럼 착각하고. ㅎㅎㅎ. 홀로 길을 지키다 문득 바라본 하늘, 구름이 걷히면서 별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줄지어 떠있는 별들이 날 위로했다. 그날 이후 두 번째 찾은 날, 혹시나 또 어둠을 기다리고 반딧불이를 기다렸다. 사진 찍을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7. 수영장정류장 지나 ‘낭만갑천길’

휘도는 갑천 물길 따라 갑천누리길을 이어간다. 금곡천이 갑천과 만나는 합수점 곁에 봉곡교가 있다. 이정표가 가리킨다. ←방동저수지 3.2㎞ 흑석리역 1.5㎞→. 봉곡교를 건너서 쭉 가면 구봉산 서쪽 들머리가 나오고 방동저수지 가는 길이 나온다. 오늘 트레킹은 봉곡교를 건너지 않고 우회한다.

조금 더 걸어가면 25번 버스만 정차하는 수영장 정류장이다. ‘흑석유원지’ 앞이어서 흑석유원지 정류장인 줄 알았던 곳. 그 앞 다리가 물안리다리다. 갑천은 대추벌을 휘돌다가 남쪽으로 머리를 돌린다. 수영장 정류장 앞에서 다시 돌아 북쪽으로 흐른다. 여기서 갑천이 품은 마을이 물안마을이다. 갑천을 건너 물안마을로 가는 다리가 물안리다리다. 물안리다리 새 교량 공사로 예전 길은 폐쇄되고 마을 안길로 살짝 들어갔다 나온다. 그리고 시작되는 낭만갑천길.

아, 낭만갑천길은 정식 명칭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붙인 이름이다. 왼쪽은 산이요 오른쪽은 갑천, 낭만적인 오솔길이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게도 익히 알려진 길이다. 그런데 ‘자전거길 폐쇄’ 안내가 붙었다. 도로 침하로 붕괴 위험 때문에 보수·보강 때까지 폐쇄됐다. 언제 어떻게 보강될지 모르지만 그동안 품었던 낭만이 사라질까 걱정된다. 사실 폭이 좁아서 자전거 통행 안전문제도 있긴 했었다. 보강하면서 폭도 넓히면 좋겠다. 인근 낮은 다리를 건너 갑천 건너편으로 간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특별한 터널, 충청권역 유물창고 [예담고] 앞을 지난다. 아스파트길 조금만 밟으면 장평보유원지 정류장이다. 마침 25번 버스가 오고 있다. 오늘도 ‘완벽한 소풍’이었다.

완벽한 소풍... 초록버스 여행 시리즈에서 잘 쓰는 표현인데, 장평보유원지에 있던 식당 이름이 ‘완벽한 소풍’이다. 갑천환경정비사업 이슈로 문을 닫았다. 식당에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오랜 친구가 떠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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