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문학평론가

칠순의 아내가 나이치레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수백 년을 산 아름드리나무도 그간 겪은 온갖 고생의 흔적을 동심원의 나이테로 남기듯, 사람도 누구나 나이가 들면서 질병이나 고생을 나이치레로 겪는다니, 아내가 잘 이겨내길 간절히 소망한다. 아내는 작년 의료대란 시기에 장염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 인근에 있는 대학병원은 입원이 어려워 민간 종합병원에 응급실을 거쳐 입원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처음엔 3일 정도 입원해 상태가 호전돼 퇴원했다가 조금씩 먹기 시작하자 도져 다시 열흘 넘게 입원 치료를 받은 뒤에야 증상이 멎었다. 당시 나는 의자 위에 올라 나무줄기를 묶다 넘어져 왼쪽 손목이 다섯 조각으로 부서져 통깁스를 한 채 아내의 병실을 지켜야 했다. 하얀 영양제를 매달고 지내는 것 빼고는 멀쩡한 아내에 비해 내가 더 심한 환자로 보였다. 그래서 아줌마들이 “아저씨가 입원하셔야 하는데 반대네유”하고 놀렸다. 아들은 이렇게 위로했다. ‘엄마가 꺾이는 나이라 그런 거니까, 이번만 잘 넘기면 한동안은 괜찮을 거예요’
살면서 한 번은 꼭 치러야 하는 병들이 있다. 올해 중학생이 된 큰손녀는 첫 돌에 돌치레를 했다. 당시 군의관으로 강원도 고성에 살던 아들네에 축하하러 갔다가, 온몸에 발진이 돋아 붉게 열꽃이 핀 손녀를 데리고 속초를 오가며 주사를 맞으며 치료하니 3일 만에 감쪽같이 나았다. 큰고모는 어려서 홍역을 앓지 않았는데 팔순의 나이에 고열과 함께 온몸에 좁쌀 모양의 붉은 반점이 돋아 말 그대로 ‘홍역을 치렀다.’ 이렇듯 살다 보면 나이에 따라 겪는 병치레가 있기 마련인가 보다.
작년에 장염을 겪은 뒤로 아내에게 나타난 새로운 병은 심장이 심하게 두근대는 것으로, 앉은 의자가 흔들릴 정도가 되어 심장내과를 찾았다. 처방대로 심전도 모니터기를 2주 정도 부착하고 검사한 결과 부정맥 증상으로 판명돼 담당 교수가 바뀌었다. 다시 심전도 모니터로 정밀 측정한 결과 심방세동 판정을 받았는데, 방치하면 뇌졸중이나 뇌경색 위험이 있다기에 약을 처방받아 조심스럽게 치료해 왔다. 약물 처방 후 호전되는 듯하다가 다시 증상이 심해져 개인병원에서 검사받은 심전도 기록지를 정기 진료에서 제시했더니, 심방조동이 겹쳤으니 시술을 받자며 최신 시술법으로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펄스장 절제술’을 권했다. 시술이 잘 되면 완치된다니 시술받는 것을 감사하며 오매불망 기다렸다. 마침내 2박 3일 입원해 시술받고 아주 잘 되었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감사하며 퇴원했다. 상처 자국이 아물어 갈 즈음 다시 가슴 두근거림이 반복되니, 아내는 이거 잘못된 거 아닌가 걱정했다. 20일이 지나고 추석 연휴에 더는 참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 결국 연휴 마지막 날 응급실을 거쳐 다시 심장내과에 입원했다. 사정이 급해 다음날 예정된 시술 마지막에 자리를 만들어 재시술했다. 이번엔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전극도자 절제술’이었고 수술은 잘 끝났다. 아내는 채 아물지 않은 상처 옆을 다시 찢고 전신마취를 해야 했다.
재시술을 한 뒤 20여 일이 지났다. 아름드리나무가 예쁜 나이테를 남기며 당당하듯이, 돌치레로 성장통을 치른 손녀가 아내보다 더 크게 자랐듯, 아내의 나이치레가 예쁜 나이테를 간직하며 우뚝한 우듬지로 자라나길 간절히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