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날도 음주 후 조용히 귀가 중이었다. 그러다 집 근처에 생긴 아이스크림 무인 판매점에 들어갔다. 술을 마시면 시원하고 달달한 게 당겨서였던 것 같은데 어렸을 적 자주 먹던 ‘서주아이스바’를 고르고 계산대로 갔던 기억이 있다. 편의점보다 저렴한 가격이었단 걸 생각하면서 바코드를 찍은 뒤 결제하고 그대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집으로 향했다. 당시 들었던 생각은 ‘나중엔 진짜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겠구나’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대중의 생각은 기자와 조금 달랐다. 나이 어린 친구들이 무인 판매점에서 계산을 안 하고 도망가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언론에도 하나둘 소개되자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신기하게도 대상은 무인 판매점이었다. 당연히 관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점주가 노력해야 하는데 보안의 책임을 경찰에게 떠넘긴다는 논리였다. 이에 따라 경찰력이 낭비, 치안에 큰 공백이 생긴다는 것이다. 제법 충격적이었다. 피해자인 무인 판매점의 점주를 공격한다는 게. 남의 물건은 절대 훔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우리네 세상 사는 기초 상식이 무너진 느낌이었다.
최근 충격을 준 캄보디아 사태에도 기시감을 느꼈다. 캄보디아 사태는 지난 2022년 10월 캄보디아 코로나19 관련 입국 제한이 완전히 해제된 직후부터 발생한 건데 한동안 대중적 관심을 받지 못하다 지난해 8월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납치 신고 건수는 2022~2023년 연간 10~20건 수준이었는데 지난해 들어 220건으로 급증했다. 올해엔 지난 8월 기준 330건으로 벌써 지난해 수치를 넘었다. 범죄 조직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취업 사기를 벌여 캄보디아로 입국하게 한 뒤 폭행 등을 통해 납치하고 보이스피싱 등에 악용한 것이다. 적극적으로 범행에 가담하게 하려고 억지로 마약을 흡입하게 했으며 말을 듣지 않으면 전기 고문을 한 영상까지 공개됐다. 어떤 방식으로 범행이 이뤄지는지 대중에 알려지지 않았는데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국민의 큰 울분을 샀다.
인두겁을 뒤집어쓴 가해자를 향해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나 이번에도 아니었다. ‘우리나라보다 국내총생산(GDP)이 훨씬 낮은 곳에서 한 달에 수천만 원을 벌 수 있다는 걸 믿은 건 지능에 문제가 있다’라는 의견부터 ‘취업 사기를 믿을 정도면 당하는 게 당연하다’라는 입장까지. 무인 판매점보다 큰 충격이었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피해자를 향한 공격이 당연시됐을까.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향해 너무나도 쉽게 안 좋은 말을 쏟아내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웠다. 그리고 이 같은 2차 가해가 쉽게 이뤄지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니 우리나라 교육은 공감이란 걸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피해자를 안타까워하고 두 번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 사회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순기능이지만 한 예능에서 유행어가 된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이기심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이다. 작금의 교육은 공감 능력을 함양할 수 있는 과정을 철저히 배제한다. 그저 좋은 점수, 그것도 남보다 더 받아야 한다는 개념이 강하기에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향해 비난을 쉽게 한다.
지난 2019년 본격적인 취업 시즌을 앞둔 추운 겨울. 대구가톨릭대학교의 중앙도서관에 한 공고가 게시됐다. ‘경력, 학력, 나이에 상관없이 급여 월 300만 원 이상에 연말에 지원을 마감한다’라는 내용과 QR코드였다. 당시 직장인의 중위 소득은 234만 원으로 신입에겐 굉장히 파격적인 액수였다. 구직을 준비 중인 대학생은 너도나도 QR코드를 찍기 위해 휴대전화를 들었고 이내 충격에 휩싸였다. 내용은 ‘1930년 그들도 속았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위안부 피해 여성이 눈물을 훔치는 사진이 나왔기 때문이다. 곧이어 ‘당시 조선인 여성이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된 방식 취업 사기로 인한 유괴, 인신매매 등은 명백한 강제징역이었다’라는 글이 등장했고 좋은 구인 글에 마음이 들떴던 학생으로 가득 찼던 도서관은 이내 침울해졌다. 과거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지만 두 사례처럼 조선인 여성을 쉽게 비난할 수 있을까. 거리낌 없이 피해자에게 돌은 던지는 지금의 현실에서 대구가톨릭대의 에피소드는 어느 때보다 더욱 크게 와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