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 미국 계산서 팁 기재 항목, 최대 25%인 곳도 많다.

‘글로벌 매너’는 세계 각국 대표들이 한데 모여 토론과 의결로 명문화된 규범이나 행동강령이 아니다.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민족과 언어, 문화와 삶의 양상이 천차만별인 각 나라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줄이고 교류하며 더불어 살아가기 위하여 형성된 일종의 암묵적인 양해 사항이자 불문율에 다름 아니다. 특히 국제교류가 빈번한 이즈음 충돌을 방지하고 오해로 인한 소모적인 낭비와 피해를 방지하려 세계인들이 공통적인 준칙으로 여기는 관행이므로 시대가 바뀌고 인식이 변화하면서 일정부분 변화하기도 한다.

2000년 이전 입학한 대학생들은 매너강의 수강 시 대체로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편이었다. 21세기 대학생들은 글로벌 매너 여러 대목에 다양한 이견을 제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여성을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국제매너의 금과옥조에 대하여 다양한 견해를 개진하곤 하였다. 여성의 위상과 권익이 향상되고 사회 진출이 크게 늘어 오히려 남성 역차별을 거론하는 상황에서 ‘레이디 퍼스트’가 왜 매너의 으뜸가는 준칙이 되어야 하는가 반론 제기가 많았다. 여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호하고 배려해야 하는 존재임을 여러 논점을 통해 설명해도 완전히 동조, 공감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아울러 글로벌 매너에서 언급하는 ‘팁’ 역시 관심영역이었다. 자신이 받은 친절과 서비스에 대한 답례로 약간의 금액을 전하는 미풍양속인 팁문화는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공식적인 제도로 정착되지는 않았지만 예전부터 다양한 상황과 경로로 건네지는 팁의 유형은 존재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을 여행하고 온 학생들은 특히 미국의 놀랄만한 팁문화 현실을 언급하며 우리나라에 도입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감사의 팁은 소비금액의 10∼15%를 권장하지만 미국의 경우 근래 18∼25%에 이르는 비율을 거의 의무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분위기여서 팁 본래 의미가 퇴색되고 소비자 부담을 가중시키는 주요 요소가 되고 있다. 메뉴판에 적힌 금액이 30달러라고 해도 세금과 팁을 더하면 40달러를 훌쩍 넘어선다. 별다른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키오스크 주문과 단순히 음식 등을 건네주기만 하는 경우에도 어쩔 수 없이 따르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주로 카드를 사용하다보니 거스름돈을 팁으로 남겨놓는 대신 계산서 아랫부분에 팁을 체크하게 한다<사진>. 거의 의무적으로 18%에서 25% 또는 그 이상에 이르는 팁을 선택하게 되어 미국이 리드하는 세계질서가 이런 분야에서도 새로운 관습으로 자리 잡을지 모르겠다. 결국 고용주가 부담할 인건비를 고객에게 전가하는 형국인데 소비문화의 본거지라는 미국의 이런 팁 현실은 글로벌 매너의 기준을 재고하게 한다.

자신이 받은 서비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흔쾌히 적정금액을 건네고 감사하게 받았던 종전의 미풍양속, 팁문화가 이제 새로운 양상으로 변화되고 있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인간의 자율의지와 자발적 판단이 존중받지 못하고 일정한 틀과 강제성을 수반하는 거대한 시스템을 좇아 행동해야 하는 사회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팁 박스를 비치하여 팁을 유도하는 업소가 점차 늘고 있지만 아직 반응은 냉담한 편이다. 삶의 환경이 급변하고 일상을 움직이는 새로운 요소들이 나날이 강력해지는 이즈음 중세 이후 기나긴 역사를 통하여 시행착오를 거치며 비교적 합리적이라고 간주되어온 매너 준칙, 다양한 민족들이 대체로 수긍하며 지켜온 합리적인 글로벌 예절만큼이라도 크게 바뀌지 않는 가운데 삶의 온기를 유지했으면 싶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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