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 의식보다 성적 우선시하는 학생, 교육 공백 드러나다
AI 활용 가이드라인 부재, 대학 교육의 구조적 한계 노출

최근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서 발생한 대규모 부정행위 사건은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비대면 강의 확산이 맞물리면서 교육 현장에서의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특히 학생들의 윤리 의식을 탓하기보다 교육 시스템 자체의 한계와 구조적 문제를 조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연세대의 ‘자연어처리(NLP)와 챗GPT’ 강의에서 학생 절반 이상이 AI를 활용해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교수는 부정행위를 적발하고 모든 학생에게 0점을 주겠다고 공지했지만 이 사건은 학생들의 일탈보다 교육의 공백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는 결과를 초래했다. 학생들은 ‘안 쓰면 손해’라는 현실 속에서 윤리보다 성적을 우선시하는 상황에 처한 거다. 또 고려대에서도 비대면 온라인 시험 중 일부 학생들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문제를 공유하며 집단 부정행위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번 사건은 일부 대학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대학의 77.1%가 생성형 AI 활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다. 많은 대학이 AI를 교육 과정에 통합하지 못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금지된 도구’를 필요에 따라 활용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전문가들은 대학 재정 상황과 비대면 강의 증가가 대규모 강의 확산을 초래했다고 분석한다. 이로 인해 교수들이 학생 개개인을 관리하기 어려워지며 부정행위 가능성을 상승시킨다는 거다. 실제 연세대의 대형 강의 수는 2020년 75개에서 지난해 104개로 증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의 윤리 의식에만 기대는 것은 행정 편의주의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더욱이 AI 윤리에 대한 담론은 넘쳐나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여전히 선언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교육계는 ‘AI 사용은 부정행위’라는 원칙을 내세우지만 산업계와 사회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젊은 세대에게 AI는 이미 ‘학습 도구’이자 ‘생존 기술’로 인식되고 있지만 대학은 여전히 윤리라는 단어 뒤에 숨어 변화를 늦추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선 AI를 막기보다 활용 능력을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AI를 금지할 게 아니라 잘 쓰게 가르쳐야 한다’거나 ‘AI 수업에서 AI 쓰면 왜 부정이냐’, ‘계산기가 있는데 손으로 계산하라 하면 그게 교육인가’ 등의 반응이 주를 이룬다. 즉 교육이 AI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조길상 기자 pcop@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