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민 대전시 복지국장
매년 11월 19일은 ‘아동학대 예방의 날’이다.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사회 전반에 알리고 모든 아동이 존중받으며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자는 취지에서 제정됐다. 아동학대는 단순히 한 가정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는다. 피해아동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신체·정서적 상처를 남기며 사회의 건강한 기능을 훼손하는 중대한 범죄이자 공동체 전체의 과제다.
보건복지부와 아동권리보장원 통계에 따르면 2023년 전국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4만 8522건이었고 지난해 5만 242건으로 증가했다. 특히 재학대 발생 비율은 2022년 16%, 2023년 15.7%, 2024년 15.9%로 매년 신고된 6~7건 중 1건은 다시 학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아동학대 대응이 사건 발생 이후의 신속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피해가 발생한 이후의 개입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미 상처받은 아동의 회복에는 긴 시간이 걸리며, 그 과정에서도 재학대의 위험은 여전히 존재한다. 사후 대응만으로는 아동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 마치 불이 난 뒤에야 소방호스를 드는 것과 같다. 서양의 격언 ‘예방이 치료보다 낫다(Prevention is better than cure)’는 문장은 지금 우리 사회의 과제를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아동학대 대응체계는 이제 신속에서 선제로 전환돼야 한다. 위험 징후를 조기에 포착하고 피해가 발생하기 전 지원과 개입이 이뤄질 때 비로소 아동의 생명과 안전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
대전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공공과 민간이 상시 협력하는 ‘아동학대 대응 민·관 협력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아동학대전담공무원, 아동보호전문기관, 경찰, 의료기관, 교육기관 등이 함께 참여해 위험 징후를 조기 발견하고 신속히 개입할 수 있는 기반을 단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올해는 중구를 중심으로 ‘아동학대 예방·조기지원 시범사업’을 추진, 위기 징후가 있는 가정에 대해 상담, 심리치료, 부모교육, 양육코칭 등 맞춤형 선제지원 모델을 실험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내년엔 참여 자치구를 확대해 촘촘한 지역 중심의 예방체계를 확립할 계획이다. 학대피해 아동의 정서적 안정과 건강한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거점심리지원팀의 역할도 고도화하고 있다. 거점심리지원팀이 아동학대전담의료기관, 학대피해아동쉼터 등 유관 시설과의 연계·협력체계를 한층 공고히 해 학대피해 아동에 대한 심층심리치료와 의료·회복지원이 통합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단기적 대응에 그치지 않고 아동이 심리적으로 회복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회복 중심의 복지체계 구축이라 할 수 있다.
‘미우주무(未雨綢繆)’는 ‘비가 오기 전에 미리 지붕을 수선한다’는 뜻이다. 아동학대 예방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학대가 명확히 드러난 순간에는 이미 늦을 수 있다. 아동의 행동·정서 변화, 부모의 양육태도, 가정 내 긴장감 등 작은 신호를 민감하게 감지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행정기관뿐만 아니라 이웃, 학교, 지역사회 모두가 하나의 보호망이 되어야 한다. 지역사회의 따뜻한 관심이 아동 한 명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아동은 국가와 사회의 미래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모든 아동이 안전하고 존엄하게 성장할 권리를 가지며 어떠한 형태의 폭력으로부터도 보호받아야 한다고 명시한다. 따라서 사건 발생 이후의 처벌 강화에만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발생 이전 단계에서의 예방 중심 정책과 시민 참여 기반의 사회적 감시망이 정착돼야 한다.
시는 선제적 개입의 방향성을 갖고 아동학대 위험 징후를 조기에 발견, 지역사회 자원을 긴밀히 연계해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 모든 시민이 ‘아동 보호자’라는 인식을 가지고 주변의 작은 위험 신호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교육과 홍보를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한 아동의 안전은 곧 우리 모두의 안전이다. 작은 관심과 용기 있는 신고, 그리고 미리 내미는 손길이 한 생명을 지킬 수 있다. 오는 19일 ‘아동학대 예방의 날’을 맞아 우리 모두가 미우주무의 마음으로 아동학대 없는 도시, 안전한 대전을 함께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
